
목차
부안에 갔다가 예상보다 많은 술을 발견하고 왔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산과 서해 갯벌이 맞닿은 이 고장의 지역 전통주와 저마다 다른 철학으로 술을 빚는 양조장 세 곳을 알아봤다.
부안 전통주 — 팔선주와 오디주
부안에는 양조장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내려오던 술이 있다. 내변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채취한 약재로 빚던 팔선주, 그리고 서해 해풍을 맞고 자란 참뽕(오디)으로 만든 오디주가 그것이다.
팔선주(八仙酒)
팔선주는 부안 내변산 지역에서 전해지는 약주 계열의 토속주다. 이름에 담긴 숫자 ‘팔’은 재료의 수에서 왔다.
마가목·음정목·노나무·오가피·석창포·위령선·창출·우슬, 정확히 8가지 약재가 들어간다.
내변산 깊은 산중에서 나는 것들을 모아 술을 빚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술의 이름도 ‘여덟 신선이 마시는 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 팔선주를 공식 생산하는 상업 양조장은 확인되지 않는다. 가양주 형태로 빚어 마시던 전통이 이어지다 명맥이 가늘어진 경우로, 지금은 기록 속에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 술이다.
그럼에도 내변산양조장이 오가피·마가목 등 산중 약재를 활용한 라인업을 이어오는 것은 이 팔선주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오디주(桑心酒)
부안이 오디 산지로 이름을 얻은 것은 오래된 일이다. 변산반도 서쪽에서 불어오는 서해 해풍을 맞고 자란 부안 참뽕은 당도와 향이 내륙산과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오디로 술을 빚기 시작한 것은 부안군 유유마을에 조성된 누에 타운이 계기였다. 뽕나무와 누에를 활용한 가공품들이 나오면서, 해풍을 맞은 뽕 열매의 장점을 살린 술도 함께 탄생했다.
처음에는 그냥 ‘오디주’라고 불렸다. 이후 타 지역 제품과 차별화하고 부안의 향토 자원을 알린다는 의미를 담아 ‘부안 뽕주’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다.
전북 부안의 지역술은 아니지만 오디를 주재료로 빚은 한국의 전통 약용주로는 상심주(桑椹酒)가 있다.
오디를 60일간 자연 발효시킨 뒤 6개월 이상 저온 숙성하는 방식으로, 은은한 오디 향에 깊은 보랏빛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1. 내변산양조장 (동진주조)
내변산양조장의 전신인 동진주조는 1977년 부안에 자리를 잡은 이후 40여 년간 이 고장 막걸리를 책임져온 양조장이다.
2007년 공장 및 생산시설을 현대화했으며, 전북 쌀과 정제수를 기본 원료로 탁주·약주·과실주를 두루 생산한다.
증류 공정에는 독일 코테사의 순동 증류기를 이용한 상압식 제조방식을 쓰고, 숙성은 항아리에서 이루어진다.
줄포 생막걸리

국내산 쌀
내변산양조장의 대표 막걸리다. 줄포는 부안 남쪽에 위치한 항구 마을로, 조선 시대 서해 교역의 거점이었던 곳이다.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주최 우리술 품평회에서 생막걸리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국내산 쌀로만 빚은 막걸리다.
부안참뽕막걸리

국내산 쌀
부안 참뽕(오디)을 활용한 살균 탁주다. 오디 과즙을 더해 은은한 보랏빛이 감돌고, 제성 후 살균 시 탄산을 가미해 청량감을 살렸다.
2013년·2015년 우리술 품평회 살균막걸리 부문 우수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부안참뽕주

주정 첨가주
부안에서 자란 참뽕(오디)을 활용한 과실주다. 도수 13도의 묵직한 술로, 오디 특유의 진한 과실향이 살아 있으면서도 단맛이 과하지 않아 와인처럼 음식과 곁들이기 좋다.
백제소주

주정 무첨가
국내산 쌀 100%
내변산양조장에서 내는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다. 25도·33도·45도 세 가지 버전이 있으며, 국내산 쌀만으로 빚은 원주를 상압 증류한 뒤 숙성 전용 항아리에 8개월간 숙성한다.
원재료가 정제수와 쌀증류원액 둘뿐으로 첨가물이 없는 순수한 구성이다. 갓 증류한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둥글고 부드러운 질감이 남는 것이 이 공정의 핵심이다.
2. 강산명주
강산명주(부안군 석정로 83)는 “맑은 강, 푸른 산의 정취에 매료된 사람들, 전통을 지키고 세상에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양조장이다.
막걸리 중심이었던 부안 전통주 시장에 증류식 소주라는 새로운 흐름을 가져온 곳이기도 하다.
모리 (보리 증류소주)

주정 무첨가
‘모리’는 ‘보리가 이롭다(利)’는 의미를 담은 이름의 찰보리 증류식 소주다. 부안에서 재배한 찰보리를 자체 도정 공정을 거쳐 증류하며, 오크칩을 활용해 숙성향을 더한다. 19도와 29도 두 가지가 있으며 가격은 각각 9,800원과 22,000원이다.
처음에는 드라이하게 시작했다가 뒤로 갈수록 바닐라향과 오크 숙성향이 올라온다. 소주 특유의 날카로움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자주 추천되는 술이다.
2022년 모리29를 2022병 한정으로, 2023년 2차 한정 출시도 이루어졌으며 매번 소진될 정도의 팬층이 형성되어 있다.
그라주

주정 무첨가
강산명주의 쌀 기반 증류주다. 17도와 25도로 나뉘며, 모리가 보리의 개성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그라주는 좀 더 담백하고 깔끔한 방향을 택한다. 원재료를 보면 지황·건대추·건조누에 등 약재를 더한 구성으로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인공감미료와 주정은 들어가지 않는다.
제주 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인 뒤 한동안 구하기 어려웠지만 강산명주 SNS를 통해 재발매 소식을 접하고 구매하는 이들이 늘었다.
3. 유유양조 — 채석강 절경을 이름에 담은 변산의 막걸리
유유양조(부안군 변산면 참뽕로 407-32)는 세 곳 중 가장 최근에 문을 연 양조장이다. 변산반도 서쪽 끝 채석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변산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제품명들이 모두 이 고장의 풍경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원재료 구성이 세 곳 중 가장 단출하다. 인공감미료도, 주정도 없다.
채석강막걸리

주정 무첨가
가장 눈에 띄는 건 도수다. 채석강막걸리는 10도·13도·15도·17도 네 가지로 나뉜다. 일반 막걸리(6도 내외)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높다.
고도수 막걸리 카테고리로, 청주나 약주에 준하는 숙성감을 유지하면서도 탁주 특유의 질감을 살린 스타일이다.
도수에 비해 꽤 드라이하고 산미와 풍부한 향이 좋은게 송명섭 막걸리가 떠오르기도 하는 오랜만에 만난 달지 않은 고도수 막걸리라 좋았다.
변산노을

주정 무첨가
변산노을은 유유양조에서 내는 약주다. 변산반도 서쪽으로 지는 서해 노을을 이름에 담았다. 원재료가 쌀·누룩·정제수 셋뿐이다. 이 외에도 찹쌀·멥쌀·누룩으로 빚은 연주13, 탱자와 사과를 더한 운향, 뽕나무열매추출액을 넣은 오디숨결 등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