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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티크(Diptyque) 브랜드 스토리와 추천 향수 Top 5, 세 예술가가 그린 파리의 향기

파리 생제르맹 거리를 걷다 보면, 유독 오래된 서점과 갤러리들 사이로 향기로운 공기가 흘러나오는 곳이 있다.

34번지, 1961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딥티크의 첫 번째 부티크다.

딥티크(Diptyque)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 δίπτυχος에서 유래했다. 두 개의 패널로 이루어진 그림, 즉 ‘이폭화’를 뜻하는 이 단어는 중세 유럽에서 두 면으로 접히는 예술 작품을 가리켰다.

창립자들은 왜 이 독특한 이름을 선택했을까. 그들은 향기와 시각 예술이 서로를 비추는 두 개의 거울과 같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향은 하나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하나의 이미지는 다시 향의 기억을 되살린다. 딥티크의 상징적인 타원형 라벨에 손으로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이 담기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철학 때문이다.

세 명의 예술가, 하나의 꿈

딥티크 전경

1961년, 세 명의 예술가가 파리에서 만났다. 무대 디자이너 이브 쿠에슬랑(Yves Coueslant), 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리스티안 고트로(Christiane Gautrot), 그리고 영국 출신 화가 데스몬드 녹스-리트(Desmond Knox-Leet).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였지만, 공통된 열정이 있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발견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갈망.

그래서 처음엔 향수가 아닌 패브릭과 장식품을 팔았다. 영국에서 들여온 직물, 인도에서 가져온 소품, 이탈리아의 유리 공예품들이 작은 부티크를 채웠다.

하지만 그들의 가게에는 늘 어떤 향기가 감돌았다. 영국에서 가져온 포푸리, 인도의 인센스, 여행지에서 모은 향료들. 손님들은 물건보다 그 향기에 대해 더 자주 물었다.

“우리는 향수 회사를 만들려고 한 적이 없었다.
단지 우리가 사랑하는 냄새들을 담아두고 싶었을 뿐이다.”— 이브 쿠에슬랑


향초에서 시작된 혁명

딥티크 최초의 향초 컬렉션

1963년, 딥티크는 첫 번째 향초를 선보인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딥티크 캔들의 시작이었다. 당시 향초는 주로 교회나 특별한 의식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일상의 공간에서 향초를 피운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시대였다.

세 창립자는 영국 튜더 왕조 시대의 향 레시피에서 영감을 받았다. 16세기 유럽 귀족들이 즐기던 포푸리와 허브 혼합물의 배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 오랜 레시피를 바탕으로 산사나무의 청초함을 담은 오베핀(Aubépine), 따스한 계피 향의 까넬(Cannelle), 그리고 그윽한 홍차 내음의 떼(Thé)가 탄생했다. 이 세 가지 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딥티크 캔들의 견고한 기초가 되었다.

화가였던 데스몬드 녹스-리트가 직접 라벨을 디자인했다. 지금도 딥티크의 상징인 손으로 그린 타원형 라벨은 바로 그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1993년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 전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로(L’Eau) – 최초의 향수가 담은 영국의 기억

Diptyque L`Eau EdT

1968년, 딥티크는 드디어 첫 번째 오 드 뚜왈렛 ‘로(L’Eau)’를 출시한다.
조향사 노르베르 비자우이(Norbert Bijaoui)가 만든 이 향수는 영국식 포푸리의 향기를 담았다.

시트러스, 클로브, 시나몬, 제라늄이 어우러진 로는 당시 프랑스 향수 시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화려하고 관능적인 프렌치 향수 대신, 절제되고 지적인 영국식 향기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향수 평론가 타냐 사니체스는 이 향수를 두고 “고대적이면서도 영원히 현대적”이라고 평가했다.

로는 딥티크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예고하는 선언이었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기억과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향을 만들겠다는 철학. 이 정신은 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딥티크의 조향 철학

딥티크 조향 철학

딥티크를 니치 향수의 선구자로 만든 것은 단순히 좋은 향료를 사용해서가 아니다.

에르메스의 수석 조향사 장-클로드 엘레나는 니치 퍼퓸 브랜드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광고 대신 제품 자체가 말하게 하고, 강한 개성과 후각적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것.

딥티크는 정확히 그 길을 걸었다. 대규모 광고 캠페인 없이, 작은 부티크에서 시작해 입소문만으로 성장했다. 각각의 향수에는 창립자들의 여행 기억이 담겨 있다.

베트남 해안 마을 도손(Do Son)에서 맡은 튜베로즈 꽃향기. 그리스 펠리온 산의 무화과 나무 아래서 보낸 여름날의 기억. 이런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경험들이 향수의 이름이 되고, 영혼이 되었다.

딥티크 입문자를 위한 향수 추천

딥티크의 향수 컬렉션은 100여 종이 넘는다.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한국에서 특히 사랑받는 향수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를 추천한다.

향수명 주요 노트 성별 가격 특징
필로시코스 무화과 잎, 무화과, 코코넛, 시더우드 남녀공용 EDT 24만원대 딥티크 베스트셀러. 무화과 나무를 통째로 담은 듯한 신선한 그린 우디
도손 오렌지 블로썸, 튜베로즈, 핑크 페퍼, 머스크 여성 추천 EDT 24만원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딥티크. 파우더리하고 포근한 화이트 플로럴
탐 다오 샌달우드, 시더우드, 사이프러스, 머스크 남녀공용 EDT 24만원대 명상적인 우디 향.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원하는 분들께 추천
롬브르 단 로 블랙커런트 잎, 장미, 머스크 남녀공용 EDT 24만원대 1983년 출시 이래 딥티크 최다 판매. 이슬 머금은 장미의 쌉싸름한 향
오르페옹 주니퍼 베리, 재스민, 시더우드, 통카빈 남녀공용 EDP 28만원대 최근 인기 급상승. 파리 재즈바의 밤을 담은 세련된 파우더리 우디

필로시코스(Philosykos)

Diptyque Philosykos

1996년 올리비아 자코베티가 만든 필로시코스는 ‘무화과의 친구’라는 뜻이다. 그리스 펠리온 산의 무화과 숲에서 영감을 받았다.

무화과 잎의 푸른 향기, 무화과 열매의 달콤함, 나무껍질의 우디한 베이스가 하나로 어우러진다.
코코넛 노트가 락토닉한 크리미함을 더하고, 편백나무가 베이스를 받쳐준다.

“무화과 나무를 통째로 가져다 놓은 것 같다”는 평가가 따라다니는 향수다. 딥티크에서 가장 ‘니치스럽다’는 평을 듣는 향수이면서도 거부감이 적다. 너무 강한 향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고 성별을 가리지 않아 남녀 모두 사용하기 좋다.

도손(Do Son) – 베트남 해변의 튜베로즈

Diptyque Do Son EdT

2005년 출시된 도손은 창립자 이브 쿠에슬랑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태어났다. 베트남 북부 해안 마을 도손에서 보낸 유년기, 어머니가 가꾸던 정원의 튜베로즈 향.

도손은 튜베로즈 향수답게 파우더리하고 포근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튜베로즈 향수보다 훨씬 가볍고 깨끗하다. 오렌지 블로썸과 핑크 페퍼가 상쾌한 톱 노트를 열고, 튜베로즈의 크리미한 꽃향기가 한낮의 따스함처럼 퍼진다. 머스크와 벤조인이 부드러운 여운을 남긴다.

롬브르 단 로, 탐 다오와 함께 딥티크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향수다.다만 튜베로즈 특유의 진한 꽃향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처음 시도한다면 매장에서 시향 후 결정하는 것을 권한다.

탐 다오(Tam Dao) – 명상적인 샌달우드

Diptyque Tam Dao

2003년 출시된 탐 다오는 베트남의 산악 지역 ‘삼도’에서 이름을 따왔다. 샌달우드, 시더우드, 사이프러스가 어우러진 깊고 따뜻한 우디 향이다.

처음 뿌리면 신선한 나무 향이 먼저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크리미한 샌달우드가 피부 위에서 부드럽게 녹아든다. 명상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향수로, 가을과 겨울에 특히 어울린다.

향수보다는 ‘좋은 냄새’에 가깝다는 평도 있다. 옷장이나 베개에 뿌려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르페옹(Orphéon) – 파리 재즈바의 밤

딥티크(Diptyque) 브랜드 스토리와 추천 향수 Top 5, 세 예술가가 그린 파리의 향기 1

2021년 출시된 오르페옹은 비교적 최근 향수지만 빠르게 팬층을 형성했다. 1950년대 파리 라틴 쿼터에 있던 전설적인 재즈 클럽 ‘오르페옹’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주니퍼 베리의 상쾌함으로 시작해 재스민의 관능적인 꽃향기가 펼쳐진다. 시더우드와 통카빈이 따뜻한 베이스를 형성하고, 은은한 담배 연기 같은 노트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파우더리하면서도 세련된, 밤의 분위기를 담은 향수다.

“따뜻한 구석 부스에 앉아 있는 것 같은 향”이라는 리뷰가 많다.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으며, 특히 저녁 외출이나 데이트에 어울린다.

딥티크 매장에서는 무료 시향이 가능하다. 딥티크는 소위 표현하는 ‘예쁜 향’ 보다는 자연적인 향을 추구한다. 그런만큼 무난하기보단 호불호가 강한 편이니 더욱 구매 전 충분히 시향하고, 피부에 직접 뿌려 시간에 따른 변화를 확인하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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