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향료

장미는 향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사랑받는 향료다. 고대 페르시아의 궁전에서부터 현대의 럭셔리 향수에 이르기까지, 장미는 언제나 ‘꽃의 여왕’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위엄을 지켜왔다.
그리스 신화에서 장미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일리아스에서 아프로디테가 헥토르의 시신을 ‘불멸의 장미 기름’으로 보호했다는 대목이 나오며, 이는 고대부터 장미 오일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졌는지를 보여준다.
아랍의 칼리프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술탄들의 왕이요, 장미는 향기로운 꽃들의 왕이니, 우리 둘은 서로에게 걸맞은 존재다.” 이처럼 장미 향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위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 향수학에서 장미 오일은 400가지 이상의 화학 성분을 포함하는 극도로 복잡한 원료로 알려져 있다. 장-클로드 엘레나는 그의 저서에서 장미 향을 “페닐에틸 알코올과 게라니올이 특징짓는 꽃 계열”로 분류했다. 이 두 분자가 장미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그린한 향기를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같은 장미 덤불에서도 하루 중 시간대에 따라 향기가 달라진다. 폭풍이 오기 전에는 향이 더욱 강해지며, 꽃봉오리가 완전히 피기 전 새벽에 수확한 장미가 가장 달콤한 향을 품고 있다.
장미 향료의 추출 방식

장미에서 향기를 추출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약 4톤의 장미 꽃잎에서 겨우 1kg의 앱솔루트를 얻을 수 있으며, 에센셜 오일의 경우 수율이 더욱 낮다. 한 방울의 로즈 오토(Rose Otto)를 얻기 위해 30~50송이의 장미가 필요하다고 하니, 장미 오일이 왜 그토록 비싼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수증기 증류법 (Steam Distillation)
가장 전통적인 추출 방법이다. 장미 꽃잎을 물과 함께 구리 증류기에 넣고 가열하면, 수증기가 꽃잎의 세포벽을 터뜨리며 향기 분자를 끌고 나온다.
이 혼합물을 냉각시키면 물과 오일이 자연스럽게 분리되는데, 여기서 얻는 오일이 바로 로즈 오토 또는 아타르(Attar)라 불리는 에센셜 오일이다.
증류 과정에서 남은 물은 로즈워터가 되어 화장품과 요리에 활용된다. 이 방법은 16세기 페르시아에서 대규모로 발전했으며, 이후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다.
용매 추출법 (Solvent Extraction)
1873년 비엔나 국제박람회에서 처음 선보인 이 방법은 향수 산업에 혁명을 가져왔다. 꽃잎을 헥산과 같은 휘발성 용매에 담가 향기 성분을 녹여낸 뒤, 용매를 증발시키면 왁스와 향유가 섞인 반고체 상태의 콘크리트(Concrete)가 남는다.
이 콘크리트를 다시 에틸 알코올로 처리하여 왁스를 제거하면, 고농축의 앱솔루트(Absolute)가 탄생한다. 용매 추출법은 증류법보다 수율이 높고, 저온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열에 의한 향기 변형이 적어 원래 꽃향기에 더 가깝다.
초임계 CO2 추출법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방법으로, 73.8bar 이상의 압력과 31°C 이상의 온도에서 이산화탄소를 초임계 상태로 만들어 용매처럼 사용한다.
이 방법은 환경오염이 없고, 가장 원래의 꽃향기에 가까운 오일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장비 비용이 높아 고가의 원료에만 사용된다.
앙플뢰라주 (Enfleurage)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가장 오래된 추출법이다. 꽃잎을 정제된 동물성 지방 위에 올려놓으면, 시간이 지나며 향기 분자가 지방으로 스며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포마드(Pomade)를 알코올로 추출하면 앱솔루트를 얻는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 묘사된 것처럼, 이 방법은 극도로 관능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노동 집약적이고 수율이 낮아 현재는 상업적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장미 품종별 특성과 생산지

5,000종 이상의 장미가 존재하지만, 향수 산업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품종은 단 두 가지에 불과하다. 로사 다마스케나(Rosa damascena)와 로사 센티폴리아(Rosa centifolia)가 그 주인공이다.
로사 다마스케나 (다마스크 로즈)
다마스쿠스에서 유래한 이름처럼, 이 장미는 중동에서 시작되어 불가리아, 터키, 이란, 인도로 퍼져나갔다. 불가리아의 카잔락 지역, 일명 ‘장미의 계곡’은 전 세계 로즈 오일 생산량의 약 75%를 담당한다.
다마스크 로즈의 향은 강렬하고 깊다. 진한 꿀 같은 달콤함에 스파이시한 면이 공존하며, 그린하고 과일향이 섞여 있다. 특히 리치(lychee)를 연상시키는 미묘한 뉘앙스가 특징이다. 이 품종은 수증기 증류법으로 에센스를 추출할 수 있는 유일한 장미로 알려져 있다.
불가리안 로즈: 로사 다마스케나 품종의 불가리안 로즈는 가장 풍부하고 벨벳 같은 텍스처. 따뜻하고 꿀 같은 달콤함이 특징이며,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장미 오일로 평가받는다. 1652년부터 불가리아에서 재배 기록이 남아 있다.
로사 센티폴리아 (캐비지 로즈)
프랑스 그라스 지역에서 수 세기 동안 재배되어 온 품종이다. ‘백 겹의 잎’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겹겹이 쌓인 꽃잎이 양배추를 닮았다고 해서 캐비지 로즈라고도 불린다. 5월에 피기 때문에 로즈 드 메(Rose de Mai)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센티폴리아의 향은 다마스크보다 부드럽고 섬세하다. 더 가볍고 파우더리한 느낌이 있으며, 꿀보다는 꽃 자체의 달콤함이 강조된다. 주로 용매 추출법으로 앱솔루트를 생산하며, 프레스티지 향수 하우스들이 여전히 애용하는 귀한 원료다.
기타 생산지별 특성
| 생산지 | 주요 품종 | 향의 특징 |
|---|---|---|
| 불가리아 | 다마스케나 | 풍부하고 둥글며, 꿀 같은 달콤함 |
| 터키 | 다마스케나 | 약간 더 달콤하고 부드러움 |
| 모로코 | 센티폴리아/다마스케나 | 복합적이면서 밝고 화사함 |
| 프랑스 (그라스) | 센티폴리아 | 섬세하고 파우더리함 |
| 인도 | 다마스케나 | 상대적으로 가벼움 |
| 이집트 | 다마스케나 | 더욱 풍부하고 진함 |
맨디 아프텔은 그녀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장미는 부드럽고, 인도 장미는 가볍고, 이집트 장미는 풍부하고, 터키 장미는 달콤하고, 불가리아 장미는 둥글고, 모로코 장미는 밝다.”
같은 장미라도 생산지에 따라 전혀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다.
장미 향 프로파일

장미 향을 맡으면 무엇이 떠오를까. 달콤하면서도 스파이시하고, 그린하면서도 꿀 같은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 복합적인 향기는 400가지 이상의 화학 성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결과다.
장미 향의 전체적인 인상
장미 향료는 강렬하고 풍부하다. 플로럴하면서 동시에 프루티한 면을 가지고 있으며, 달콤하면서도 스파이시한 대비가 존재한다. 파우더리한 측면도 있어서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노트로 분류된다.
향수에서 장미는 주로 미들 노트(하트 노트)로 활용된다. 에르메스의 전속 조향사였던 장-클로드 엘레나는 장미를 “궁극의 하트 노트”라고 표현했다. 다른 어떤 향료와도 잘 어울리며, 블렌딩에서 실수가 있어도 장미를 조금 더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장미와 잘 어울리는 향료
자스민과의 조합은 클래식 플로럴 향수의 기본이다. 두 꽃향이 만나면 서로를 증폭시키며 풍부한 하트 노트를 형성한다.
샌달우드는 장미의 달콤함을 부드럽게 받쳐주는 우디 베이스다. 샌달우드와 장미의 조합이 서로의 거친 면을 부드럽게 다듬어준다.
베르가못은 장미의 무거움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시트러스 탑노트로 자주 사용된다. 시프레 계열 향수에서 장미-베르가못-오크모스 조합은 고전이 되었다.
그 외에도 일랑일랑, 제라늄, 패출리, 앰버 등과도 훌륭한 시너지를 낸다.
장미를 대표하는 향수 추천

겔랑 “로즈 바바르” (Rose Barbare, 2005) – 프란시스 쿠르드지앙이 조향한 이 향수는 앰버리한 장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시난, 몬타나 퍼퓸 드 포, 에스티 로더 노잉의 형광적이고 우디한 다마센 로즈를 떠올리게 하는 영리한 작품이다. 여성 향수로, 우아하면서도 깊이 있는 장미를 원하는 이에게 추천한다.
딥티크 “오 로즈” (Eau Rose, 2012) – 일상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가벼운 로즈 향수다. 다마스크 로즈와 센티폴리아 로즈를 모두 사용해 싱그러운 장미밭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리치와 베르가못이 밝은 탑노트를 형성하고, 머스크가 부드럽게 마무리한다. 남녀 공용으로, 장미 입문자에게 좋은 선택이다.
바이레도 “로즈 오브 노 맨즈 랜드” (Rose of No Man’s Land, 2015) – 현재 니치 향수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의 간호사들에게 헌정한 향수다.
터키 로즈 꽃잎과 라즈베리 꽃이 만나 스파이시하면서도 따뜻한 장미를 표현한다. 파피루스와 앰버 베이스가 독특한 깊이를 더한다. 남녀 공용.
장미 향을 구성하는 성분
장미 에센셜 오일의 화학적 조성은 품종, 재배 환경, 추출 방법에 따라 달라지지만, 핵심적인 성분들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주요 향기 성분
| 성분명 | 함량 범위 | 향기 특성 |
|---|---|---|
| 시트로넬롤 (Citronellol) | 20-40% | 달콤한 로즈, 플로럴 |
| 게라니올 (Geraniol) | 15-25% | 스위트 플로럴, 로지 |
| 네롤 (Nerol) | 5-10% | 신선한 플로럴 |
| 페닐에틸 알코올 | 1-3% | 히아신스, 그린 |
| 로즈 옥사이드 | 미량 | 그린, 드라이 로지 |
| 다마세논 | 미량 | 프루티 플로럴 |
| 메틸 유제놀 | 최대 3.5% | 스파이시, 클로브 |
20세기 초에는 장미의 8가지 성분만 알려져 있었지만, 1950년대에 20가지, 1960년대에 50가지, 20세기 말에는 400가지 이상이 확인되었다. 미량으로 존재하는 성분들도 전체 향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향을 결정짓는 핵심 분자들
장미 오일의 주요 구성 성분은 다음과 같다.
로즈 옥사이드(Rose Oxide)는 장미를 다른 꽃향과 구별 짓는 가장 특징적인 분자다. cis-로즈 옥사이드와 trans-로즈 옥사이드 두 가지 이성질체가 존재하며, 둘 다 드라이하고 그린한 로지 톱노트에 기여한다. 이 분자 하나만으로도 장미를 연상시킬 정도로 시그니처가 강하다.
시트로넬롤(Citronellol)은 장미 오일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성분이다. 달콤하고 로지한 향을 내며, 은방울꽃, 히아신스, 수선화 등의 향을 재현하는 데도 사용된다.
게라니올(Geraniol)은 장미 특유의 달콤하고 플로럴한 향기를 담당한다. 장-클로드 엘레나에 따르면, 페닐에틸 알코올과 함께 ‘장미 꽃 계열’을 정의하는 핵심 분자다.
다마세논(Damascenone)은 미량으로 존재하지만 향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프루티하고 플로럴한 뉘앙스를 더하며, 장미 오일의 복잡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페닐에틸 알코올(Phenylethyl Alcohol)은 장미 오일의 주요 성분 중 하나로, 히아신스, 은방울꽃, 작약의 향기와도 연결된다. 흥미롭게도 이 분자는 최근 사케나 밥 짓는 냄새를 표현하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CAS 번호
장미 관련 향료의 공식 CAS 번호는 다음과 같다.
- 로즈 오일 (Rose Oil): CAS 8007-01-0
- 로사 다마스케나 앱솔루트 (Bulgarian Damask Rose Absolute): CAS 90106-38-0
- 로사 센티폴리아 앱솔루트 (Rose de Mai Absolute): CAS 84604-12-6
안전성과 IFRA 규제
장미 오일은 수천 년간 사용되어 온 안전한 향료지만, 일부 성분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알레르기 유발 가능 물질
EU 화장품 지침에서 규정한 26가지 향료 알레르겐 중 장미 오일에 포함된 성분들이 있다.
- 게라니올 (Geraniol)
- 시트로넬롤 (Citronellol)
- 리날룰 (Linalool)
- 유제놀 (Eugenol)
- 리모넨 (Limonene)
- 파르네솔 (Farnesol)
- 벤질 알코올 (Benzyl Alcohol)
이 성분들이 일정 농도 이상 포함될 경우 제품 라벨에 표기해야 한다.
민감성 피부를 가진 분들은 패치 테스트를 권장한다.
메틸 유제놀 규제
장미 오일에는 최대 3.5%의 메틸 유제놀이 포함될 수 있다. IFRA(국제향료협회)는 메틸 유제놀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카테고리 4(파인 프래그런스)에서 메틸 유제놀의 최대 허용 농도는 완제품 기준 0.01% (100ppm)이다.
이 규제로 인해 장미 오일의 사용량이 제한될 수 있으며, 조향 시 다른 메틸 유제놀 함유 원료와의 총량 계산이 필요하다.
사용 시 일반 주의사항
권장 희석 비율
피부 적용 시 로즈 앱솔루트는 최대 2.5% 이하로 희석하여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임산부는 사용 전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눈과 점막 부위 접촉을 피하고, 어린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한다. 장미 오일 자체에 대한 IFRA 제한은 없으나, 그 안에 포함된 개별 성분들(게라니올, 시트로넬롤, 메틸 유제놀 등)의 제한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사용량이 조절된다.
화장품 제조 시에는 일반적으로 얼굴 제품에 1% 이하, 바디 제품에 2% 이하의 총 에센셜 오일 사용이 권장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