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매장에서 같은 이름의 향수를 두고 고민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나에는 오 드 뚜왈렛(EDT), 다른 하나에는 오 드 빠르펭(EDP)이라고 적혀 있고, 가격은 꽤 차이가 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두 단어는 향료 원액의 비율인 ‘부향률(富香率)’의 차이를 의미하며, 그에 따라 향의 성격이 다음과 같이 갈린다.
- EDT (Eau de Toilette): 부향률 5~15%. 알코올 비율이 높아 확산력(Diffusion)이 좋다. 탑 노트의 상쾌함이 강조되며, 가볍고 경쾌하게 퍼지는 ‘데일리 향수’에 적합하다.
- EDP (Eau de Parfum): 부향률 15~20%. 원액 비율이 높아 지속력(Tenacity)이 좋다. 미들/베이스 노트의 깊이감이 강조되며, 밀도 있고 풍성하게 감싸는 ‘인상적인 향수’를 원할 때 적합하다.
많은 이들이 “진한 게(EDP) 비싼 거고, 더 좋은 거 아닌가?” 하고 넘기기 쉽다.
하지만 향료의 농도만 더 짙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향사는 농도에 맞춰 향료의 배합을 다시 ‘튜닝’한다. 때문에 같은 이름의 향수라도 EDT와 EDP는 전혀 다른 성격의 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은 향수의 농도, 즉 부향률이라는 개념부터 시작해서 EDT와 EDP의 실질적인 차이,
조향사가 농도별로 향을 재설계하는 방식, 그리고 문화권마다 선호하는 농도가 다른 이유까지 하나씩 알아보자.
목차
4. 같은 향수인데 왜 다르게 느껴질까 — 조향사의 농도 설계
4-1. 샤넬 No.5와 디올 소바쥬로 보는 농도의 차이
부향률이란?

향수를 이루는 구성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향료 원액과 에탄올(알코올), 그리고 소량의 물. 이 세 가지가 전부다.
여기서 부향률이란 전체 향수 용액 중에서 향료 원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프랑스 조향사 장클로드 엘레나는 이를 두고 하나의 ‘미학적 선택’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원료를 쓰더라도 농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향이 피부 위에서 펼쳐지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향수병에 적힌 EDT, EDP 같은 약어가 바로 이 부향률을 기준으로 한 분류다.
향료의 비율이 높을수록 향이 진하고, 대체로 지속력도 길어지며, 가격 역시 올라간다.
하지만 높은 부향률이 곧 ‘더 좋은 향수’를 의미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이 미묘한 상관관계는 뒤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오 드 코롱에서 엑스트레까지 — 농도의 역사
향수의 농도 체계는 수백 년에 걸쳐 향료를 다루는 기술과 문화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고대에 향은 태워서 신에게 바치는 제례 행위였다.’퍼퓸(Perfume)’이라는 단어 자체가 라틴어 per fumum, 즉 ‘연기를 통하여’라는 뜻에서 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후 중세 아랍과 유럽에서 알코올 증류 기술이 발달하면서, 비로소 향을 액체로 만들어 몸에 직접 뿌리는 문화가 시작되었다.
쾰른에서 시작된 향수 농도의 계보
1709년, 이탈리아 출신의 조향사 요한 마리아 파리나(Johann Maria Farina)가 독일 쾰른에서 시트러스와 허브를 조합한 획기적으로 가벼운 향수를 선보였다.
이것이 바로 현대 향수 농도 체계의 시초인 ‘오 드 콜로뉴(코롱)’다.
프랑스어로 Eau de Cologne은 ‘쾰른의 물’이라는 뜻으로, 도시 이름이 곧 향수의 대명사가 된 드문 사례다.
나폴레옹은 이 오 드 콜로뉴를 끔찍이 사랑하여 한 달에 60병씩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의 오 드 콜로뉴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아쿠아 미라빌리스(Aqua Mirabilis, 기적의 물)’라 불리며 위생과 건강을 위한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다.
사람들은 이것을 몸에 바르는 것은 물론, 설탕에 적셔 먹기도 하고 목욕물에 통째로 붓기도 했다.
이후 19세기 산업혁명과 합성향료 기술의 발전으로 향수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향료의 농도에 따라 용도와 지속 시간을 구분하는 산업적 기준이 필요해졌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오 드 콜로뉴(코롱), 오 드 뚜왈렛, 오 드 퍼퓸, 엑스트레 드 퍼퓸이라는 체계적인 등급이 자리 잡게 되었다.
EDT, EDP, 퍼퓸 — 농도별 차이 비교

향수의 농도별 분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단, 이 수치는 업계의 관례적인 기준이지 법적으로 정해진 규격은 아니라서 개별 향수에 따라 상이할 수 있다.
실제로 향수 전문가들조차 저마다 정의하는 부향률의 범위가 조금씩 다르다.
루카 투린은 EDT는 약 10%, EDP는 15~18%, 퍼퓸은 25% 이상이라고 정리했다.
반면 나이젤 그룸의 《The Perfume Handbook》에서는 EDT를 4~8%, EDP를 15~18%로 기술하고 있어 출처마다 범위에 차이가 있다.
장클로드 엘레나 역시 EDT가 5~20%, EDP가 10~20%로 겹치는 구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농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표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조 말론 런던(Jo Malone London)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거의 모든 제품에 ‘코롱(Cologne)’이라 부르지만, 실제 부향률은 일반적인 오 드 뚜왈렛(EDT)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다.
실제로 지속력이 약하기로 유명한 조 말론 런던의 향수들은 이름 때문에 오 드 코롱으로 오해를 받곤 한다.
이는 낮은 농도를 뜻하는 기술적 용어로서의 코롱이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인 ‘가볍고 현대적인 스타일’을 강조하기 위한 마케팅적 명칭인 것이다.
농도별 비교 테이블
| 분류 | 부향률 | 지속 시간 | 특징 |
|---|---|---|---|
| 오 드 코롱(EDC) | 2~5% | 1~2시간 | 시트러스 중심의 산뜻한 향. 기분 전환용으로 적합 |
| 오 드 뚜왈렛(EDT) | 5~15% | 3~6시간 | 가장 대중적인 농도. 가볍고 부담 없는 데일리 향수 |
| 오 드 퍼퓸(EDP) | 10~20% | 5~8시간 | 풍부한 발향과 긴 지속력. 현대 향수의 주류 |
| 퍼퓸(Parfum/Extrait) | 15~35% | 8시간 이상 | 가장 농밀한 형태. 소량으로 깊은 잔향을 남김 |
프랑스 향수 시장에서 여성 향수의 판매 비율을 보면, 오 드 뚜왈렛이 50%, 오 드 퍼퓸이 45%를 차지한다.
반면 남성 시장에서는 오 드 뚜왈렛이 전체의 90%에 달한다. 남성용 퍼퓸 엑스트레는 아직까지도 매우 드문 편이다.
같은 향수인데 왜 다르게 느껴질까? — 조향사의 농도 설계
많은 사람이 EDT와 EDP의 차이를 농도의 차이, ‘진하기’로 이해한다.
같은 원액을 더 많이 넣으면 EDP, 적게 넣으면 EDT —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
대부분의 경우 EDT, EDP, 퍼퓸에 사용되는 향료 오일의 조성에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에르메스나 까르띠에 같은 하우스는 퍼퓸 버전에 더 비싼 원료를 더 높은 비율로 넣기도 하고, 샤넬 No.5의 경우에는 농도별로 아예 다른 조성을 사용한다.
샤넬 No.5와 디올 소바쥬로 보는 EDT와 EDP의 차이

샤넬 No.5의 경우가 가장 극적인 예시다.
퍼퓸 버전에만 프랑스 그라스 지역의 자스민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원료가 만들어내는 풍성하고 깊은 질감은 EDT나 EDP에서는 느끼기 어렵다.
EDT로 만나는 No.5는 밝고 경쾌한 인상이지만, 퍼퓸은 완전히 다른 향수처럼 느껴질 수 있다.
디올 소바쥬(Sauvage) 라인은 또 다른 방식의 농도 설계를 보여준다.
2015년 출시된 EDT는 베르가못과 시추안 페퍼의 날카로운 오프닝이 특징이다.
반면 2018년의 EDP 버전에서는 그 후추의 날카로움이 한결 누그러지고, 스모키한 바닐라와 스타 아니스가 가세하며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띤다.
흥미로운 점은 소바쥬의 경우 EDT가 오히려 실라주(확산력)에서 EDP보다 강하다는 사용자 의견이 많다는 것이다.
농도가 높다고 무조건 더 강하게 퍼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고농도 향수일수록 피부에 밀착하여 은은하게 퍼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조향사가 농도를 ‘세기 조절’이 아닌, 향의 성격 자체를 설계하는 도구로 판단하는 이유다.
아시아는 EDT, 미국은 EDP? — 문화와 체취가 결정하는 농도
향수의 농도 선호는 단순한 취향을 넘어, 그 지역의 기후와 사람들의 **유전적 형질(체취)**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은 전통적으로 낮은 농도의 EDT나 코롱을 선호해왔다. 이는 유전적으로 서구권에 비해 체취가 적은 신체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체취를 가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강한 향수는 오히려 ‘독하다’거나 ‘인위적이다’라고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인구 밀도가 높고 대중교통 이용이 잦은 문화 탓에,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살 냄새 같은 은은함’(Skin Scent)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반면 미국과 유럽 시장은 피부의 체취와 섞여도 지지 않을 만큼 강한 농도를 선호한다. 향수가 하루 종일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리는 ‘보이지 않는 옷’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넓은 공간에서도 향이 멀리 퍼지는 ‘발향력(Sillage)’을 향수의 성능 척도로 삼는 경향이 있어, 농도가 진한 EDP나 퍼퓸 등급이 주력으로 팔린다.
이러한 차이는 브랜드의 글로벌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할 때 ‘아시아 전용’으로 농도를 낮춘 라이트 버전을 출시하거나, 투명하고 물기 어린(Watery) 노트가 강조된 EDT 라인업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미국에서 ‘코롱(Cologne)’이라는 단어는 유럽과 조금 다르게 쓰인다.
유럽에서 코롱은 가장 묽은 농도(2~4%)를 뜻하지만, 미국에서는 남성들이 쓰는 ‘일반적인 남자 향수(Men’s Fragrance)’를 통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미국 남자가 “나 코롱 뿌렸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주 묽은 향수가 아니라 꽤 진한 오 드 뚜왈렛(EDT)급 향수일 가능성이 높다.
농도와 지속력 — 부향률만이 전부는 아니다
“부향률이 높으면 오래간다”는 말은 대체로 맞지만,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지속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농도 하나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속력을 결정하는 진짜 요인들
향수의 지속력은 근본적으로 향료 분자의 휘발성에 달려 있다.
향료는 휘발 속도에 따라 톱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로 분류한다.
톱 노트는 6~18시간 안에 사라지고, 미들 노트는 24~48시간, 시벳이나 파출리 같은 강한 베이스 노트는 며칠 이상 블로터 위에 남는다고 설명한다.
이 말은 곧, 시트러스 향료 위주로 구성된 향수는 부향률이 아무리 높아도 지속력이 짧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우드, 머스크, 앰버 같은 무거운 베이스 노트가 탄탄하게 받쳐주는 향수는 낮은 부향률에서도 충분한 잔향을 남긴다.
향료의 ‘잔류성(substantiv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더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향료 분자가 피부라는 기질에 얼마나 잘 달라붙고 머무는가는 분자량, 증기압, 그리고 피부 표면과의 물리화학적 친화력에 의해 결정된다.
향수의 지속력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도 있다. 건조한 피부보다 보습이 잘 된 피부에서 향이 더 오래 남고, 차갑고 건조한 공기에서는 후각 민감도 자체가 떨어져 향을 덜 느끼게 된다.
향수를 뿌리기 전에 무향 보습제를 살짝 바르는 것만으로도 지속력에 차이가 난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베이스 노트의 역할이다. 베이스 노트는 단순히 오래 남는 향이 아니라, 다른 노트들의 증발 속도를 늦춰주는 ‘고정(fixation)’ 기능을 한다.
좋은 베이스 노트는 톱 노트와 미들 노트를 피부 안으로 끌어들여 천천히, 몇 시간에 걸쳐 풀어놓는다. 잘 만들어진 향수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향이 변화하는 이유다.
| 노트 분류 | 휘발 속도 | 블로터 잔존 시간 | 대표 향료 |
|---|---|---|---|
| 톱 노트 | 빠름 | 6~18시간 | 베르가못, 레몬 |
| 미들 노트 | 보통 | 24~48시간 | 자스민, 로즈, 아이리스 |
| 베이스 노트 | 느림 | 수일 이상 | 샌달우드, 베티버, 패츌리 |
상황에 맞는 농도 고르기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에게 맞는 농도는 무엇인가”일 것이다.
정답은 없지만, 몇 가지 기준을 잡아보면 선택이 한결 수월해진다.
출퇴근, 일상적인 활동에는 EDT가 편하다. 가볍게 뿌리고 나서도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으며, 필요하면 낮에 한 번 더 뿌릴 수 있다.
시트러스나 그린 계열의 상쾌한 향수를 사용한다면 EDT가 그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
저녁 약속이나 특별한 자리에는 EDP가 좋은 선택이다. 한 번 뿌리면 퇴근 무렵까지 은은한 잔향이 남아 있고, 향의 전개가 EDT보다 풍부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향수의 이야기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에는 퍼퓸이나 엑스트레를 시도해보자.
소량만 피부에 얹으면 체온에 의해 천천히 풀려나며, 가장 내밀한 거리에서만 감지되는 향의 층위를 느낄 수 있다.
고농도 향수일수록 피부 화학과의 반응이 깊어지기 때문에, 똑같은 향수라도 사람마다 다른 결을 보여준다.
향수를 시향할 때도 농도를 염두에 두면 좋다. 매장에서 시향지에 뿌린 직후의 인상은 주로 톱 노트에 해당한다.
EDT는 이 톱 노트가 강조되는 경향이 있고, EDP는 미들과 베이스 노트가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최종 결정은 반드시 피부에 직접 뿌린 뒤, 최소 30분 이상 지난 후에 내리는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