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치 위스키의 세계에서 피트 위스키는 가장 개성 있고 강렬한 캐릭터를 자랑한다. 특히 아일라(Islay) 섬의 위스키들은 스모키하고 의약품 같은 독특한 풍미로 전 세계 애호가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강렬한 풍미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index
- 피트(Peat)란? 위스키의 스모키한 영혼
- 피팅(Peating) 공정. 맥아에 피트, 스모키 향을 입히는 법
- 강한 피트를 가르는 척도, PPM은 어떻게 측정할까?
- 옥토모어(Octomore)의 비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PPM을 달성하는 특별한 방법
- 다른 증류소들은 왜 초고PPM 피트 위스키를 생산하지 않을까?
피트(Peat)란? 위스키의 스모키한 영혼

피트(Peat)는 무엇인가?
피트는 한국어로 이탄(泥炭) 또는 토탄(土炭)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Whiskey 업계에서는 영어 발음 그대로 ‘피트’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피트는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자연의 선물이다.
습지나 늪지대에서 이끼, 풀, 관목, 나무 등의 식물이 부분적으로 분해되면서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압축되어 만들어진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유기 침전물이 수분이 많은 조건에서 이끼와 다른 식물들이 부분적으로 분해되어 형성된 것”으로 정의한다.
피트의 형성 속도는 얼마나 느릴까?
피트는 1년에 약 1mm씩 자란다. 즉, 10cm층이 형성되는 데는 무려 100년이 걸린다. 현재 대부분의 피트층은 약 12,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 형성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에서 피트는 주로 아일라 섬, 오크니 제도, 그리고 Speyside 일부 지역의 습지에서 발견된다. 지역마다 특성이 조금씩 다른데, 이는 피트를 구성하는 식물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일라의 피트는 해초와 바닷바람의 영향을 받아 요오드와 해양 특성을 지니는 반면, 본토는 나무와 헤더(heather)가 많아 좀 더 흙내음과 우디한 특성을 보인다.
피트가 가진 다양한 향기 성분
피트를 태울 때 나오는 연기에는 80가지 이상의 방향 화합물이 포함되어 있다.
| 페놀 화합물 | 풍미 특성 |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곳 |
|---|---|---|
| 페놀(Phenol) | 의약품 같은 소독약 향, TCP 노트 | 밴드에이드, 치과 소독약, 구강청결제 |
| 과이아콜(Guaiacol) | 탄 나무, 스모키한 향 | 훈제 베이컨, 바비큐 고기, 캠프파이어 연기 |
| 시링골(Syringol) | 달콤하고 스파이시한 바닐라 향 | 정향(클로브), 바닐라 아이스크림, 참나무 향 |
| 크레졸(Cresol) | 흙내음, 타르, 유기물 향 | 새 타이어 냄새, 아스팔트 도로, 가죽 제품 |
| 브로모페놀(Bromophenol) | 해조류, 해양 특성 | 김, 미역, 바닷가 조수 웅덩이 냄새 |
이러한 화합물들의 조합이 우리가 피트 위스키에서 느끼는 복잡한 풍미를 만들어낸다.
피팅(Peating) 공정. 맥아에 피트, 스모키 향을 입히는 법

위스키 제조 과정에서 피트는 단 한 단계에서만 사용된다.
바로 맥아를 건조하는 킬닝(kilning) 단계다.
맥아 제조와 피팅의 타이밍
보리는 먼저 물에 침지되어 발아 과정을 시작한다.
발아는 보리 안의 전분을 발효 가능한 당으로 전환하는 효소를 활성화시킨다.
일반적으로 보리는 약 2일간 물에 담가졌다가 3-4일간 발아된다.
발아된 맥아는 이제 건조되어야 하는데, 이때 피팅 공정이 시작된다.
킬른에서 일어나는 일
맥아는 건조를 위해 ‘킬른’이라는 건조용 가마로 옮겨진 후 천공된 바닥 위에 습한 맥아를 펼친다.
아래에서는 피트 덩어리를 삽으로 떠서 불에 넣는다.
피트는 완전히 타지 않고 그을리면서 두꺼운 회색 연기를 만들어낸다.
이 연기가 맥아를 감싸면서 페놀 화합물이 습한 맥아 껍질 표면에 흡착된다.
피팅 시간과 강도 조절
맥아가 피트 연기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수록 더 많은 페놀이 흡착된다.
라프로익(Laphroaig) 증류소의 경우 킬른에서 하루에 1.5톤의 피트를 태우며, 오직 피트만을 연료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맥아는 약 12-18시간 동안 연기에 노출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증류소는 코크스(coke) 같은 다른 연료를 병행 사용해서 페놀 수치를 조절한다.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48시간을 초과하면 맥아 껍질이 이미 충분히 건조되어 더 이상 연기를 흡수하지 못한다.
| 피팅 수준 | 총 페놀(PPM) | 대표 증류소 |
|---|---|---|
| 라이트 | 1-5 ppm | 번나하번, 카올일라(하이랜드 스타일) |
| Medium | 5-15 ppm | 하이랜드 파크, 탈리스커 |
| 헤비 | 15-50 ppm | 라프로익, 라가불린, 아드벡 |
| 슈퍼 헤비 | 80+ ppm | Octomore |
증류소별 맥아 소싱
현대의 대부분 증류소는 상업용 몰팅 업체로부터 맥아를 구매한다.
아일라의 포트 엘렌 몰팅스(Port Ellen Maltings)는 라가불린, 카올일라, 아드벡 등 여러 증류소에 피트 맥아를 공급한다.
본토의 베어즈 몰트(Bairds Malt)는 브룩라디 증류소의 옥토모어용 초고 피팅 맥아를 제조한다.
일부 증류소는 자체 플로어 몰팅(floor malting)을 유지하는데, 이는 지역 고유의 피트 특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강한 피트를 가르는 척도, PPM은 어떻게 측정할까?

PPM은 “Phenol Parts Per Million”의 약자로, 100만 분의 1 단위로 페놀 함량을 측정하는 지표다.
위스키 업계에서 PPM이라고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건조된 맥아의 페놀 함량을 의미한다.
PPM 측정 방법
맥아의 페놀 함량은 두 가지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다.
1. 맥팔레인 방법(Macfarlane’s Method)
비색법(colorimetry)의 일종으로, 빠르고 저렴하지만 덜 정확하다.
업계 표준으로 많이 사용되며, HPLC보다 체계적으로 낮은 수치를 보인다.
2. HPLC (High Performance Liquid Chromatography)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로, 더 정확하지만 비용이 높다.
옥토모어는 HPLC 방식으로 측정하여 더 높은 PPM 수치를 기록한다.
몰팅 업체의 실험실에서는 맥아 샘플의 페놀, 수분, 질소 함량, 예상 증류 수율 등을 분석한다.
PPM의 함정: 맥아 vs 증류액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위스키 라벨에 표시된 PPM은 대부분 맥아의 페놀 함량이지, 병 속 위스키의 실제 페놀 함량이 아니다.
증류 과정에서 페놀이 손실되는 이유
매싱(mashing) 단계에서 일부 페놀은 찌꺼기(draff)에 남는다.
발효 과정에서도 일부가 변화하거나 마스킹된다.
증류 시 페놀은 높은 비등점을 가진 큰 분자라서 증류 사이클 말기에만 증기로 나온다.
증류사의 컷 포인트 설정에 따라 얼마나 많은 페놀을 포집할지 결정된다.
같은 PPM, 다른 풍미
라가불린과 카올일라는 둘 다 포트 엘렌 몰팅스에서 35ppm으로 피팅된 동일한 맥아를 사용한다.
그런데 라가불린이 훨씬 더 스모키하게 느껴진다.
| 요인 | 라가불린 | 카올일라 |
|---|---|---|
| 발효 시간 | 짧음 | 김 |
| 증류 속도 | slowness | speed |
| 컷 포인트 | 늦게(더 많은 페놀 포집) | 일찍(가벼운 페놀만) |
| 스틸 형태 | 짧고 넓음 | 높고 좁음 |
| result | 무겁고 스모키 | 가볍고 우아 |
As such PPM 측정은 하나의 지표일 뿐, 위스키의 실제 스모키함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맥아에 있던 페놀의 30-50%만이 뉴메이크 스피릿에 남는다.
그리고 숙성 과정에서도 페놀은 계속 감소한다.
일부는 증발하고, 일부는 오크통에 흡수되며, 일부는 화학적으로 변환된다.
옥토모어 에디션이 주로 5년 숙성 라인인 것은 숙성 기간이 길어질 수록 특화시킨 페놀의 함량이 줄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옥토모어(Octomore)의 비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PPM을 달성하는 특별한 방법

옥토모어는 브룩라디(Bruichladdich) 증류소에서 생산하는 초고 피팅 싱글 몰트 위스키다.
2002년 첫 증류가 이루어졌고, 2008년 첫 병입이 출시되었다.
초기 옥토모어 1.1은 131ppm으로 당시 세계 기록을 세웠다.
그 이후 옥토모어는 매년 새로운 시리즈를 출시하며 PPM 기록을 경신해왔다.
- 옥토모어 6.3: 258ppm (2015년 출시)
- 옥토모어 8.3: 309.1ppm (2017년 출시, 역대 최고 기록)
- 옥토모어 15.3: 307.2ppm (2024년 출시, 역대 2위)
옥토모어만의 특별한 제조 방식
그렇다면 옥토모어는 어떻게 이렇게 높은 PPM을 달성할 수 있을까?
1. “언컷(Uncut)” 첫 배치 사용
일반적으로 증류소들은 첫 번째 피팅 런에서 나온 가장 강하게 피팅된 맥아를 덜 피팅된 맥아와 블렌딩해서 일정한 PPM을 맞춘다.
하지만 옥토모어는 이 첫 배치만을 사용한다.
브룩라디의 헤드 디스틸러 아담 하넷은 “옥토모어는 언컷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특정 PPM을 정확히 조절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2. 베어즈 몰트와의 협업
브룩라디 증류소는 인버네스의 베어즈 몰트에 “가능한 한 가장 강하게 피팅된 맥아”를 주문했다.
베어즈는 50톤의 맥아 배치에 5일간 8톤의 피트를 태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트의 수분 함량, 불에 넣는 속도, 킬른의 통풍 등 모든 요소가 최종 PPM에 영향을 미친다.
3. HPLC 측정법 사용
옥토모어는 더 정확하고 높은 수치를 보이는 HPLC 방식으로 페놀을 측정한다.
일반 비색법으로 측정하면 같은 맥아라도 낮은 수치가 나온다.
옥토모어의 독특한 풍미 프로필
많은 사람들이 옥토모어를 처음 맛봤을 때 의외로 부드럽다고 느낀다.
309ppm이라는 수치에서 예상되는 압도적인 스모키함 대신, 달콤하고 과일향이 나며 우아한 풍미를 보인다.
브룩라디의 생산 방식이 만드는 차이
• 긴 발효 시간 (60-105시간): 달콤하고 과일향 나는 워시 생성
• 느린 증류: 섬세하고 리파인된 스피릿
• 좁은 컷 포인트: 가벼운 페놀 위주로 포집
• 높고 좁은 스틸: 리플럭스 증대
결과적으로 옥토모어는 높은 맥아 PPM에도 불구하고, 실제 스피릿의 페놀 함량은 예상보다 낮고 밸런스 있는 위스키가 된다.
대부분의 옥토모어는 5년산으로 병입되는데, 이는 숙성 중 페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다른 증류소들은 왜 초고PPM 피트 위스키를 생산하지 않을까?
옥토모어의 성공을 보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든다.
왜 다른 증류소들도 300ppm이 넘는 위스키를 만들지 않을까?
기술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
1. 장비에 미치는 영향
브룩라디 증류소의 자료에 따르면, 높은 페놀 함량은 모든 장비와 연결 배관에 영향을 미친다.
옥토모어는 짧은 배치로만 생산되며, 전체 시스템을 플러싱해서 페놀이 비피티드 스피릿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옥토모어는 브룩라디 전체 생산량의 단 10%만을 차지한다(연간 약 15만 리터).
2. 초고 PPM 맥아의 비효율적인 제조 방식
초고 PPM 맥아를 제조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다.
베어즈 몰트 같은 전문 업체의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상업용 몰팅 업체는 표준화된 PPM 범위 내에서 작업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불리한데 몰트는 완전히 건조되면 더 이상 연기를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열풍 건조하는 다른 몰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건조해야한다.
50-80°C의 낮은 온도로 천천히 콜드 스모킹을 하면서 일반적인 아일라 위스키는 20-30 시간 피팅하는데 반해 옥토모어에 쓰이는 몰트는 120시간 동안 콜드 스모킹 방식으로 피팅한다고 한다.
맥아가 지나치게 건조하게 되면 맥아에 다시 물을 미스팅하기도 하면서 아주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이는 킬른의 회전율을 저하시키고 같은 시간에 2-3배치를 처리할 수 있는 기회비용 발생시킨다.
이 때 사용되는 피트양 역시 40톤의 맥아 배치에 8톤 정도의 피트가 사용되며 이는 일반 위스키의 3-4배나 된다고 한다.
3. 일관성 문제
옥토모어의 아담 하넷은 “언컷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정확한 PPM을 조절할 수 없다”고 했다.
옥토모어의 첫 배치는 80.5ppm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배치들은 100ppm을 훌쩍 넘어섰다.
이런 변동성은 일관된 제품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증류소에게는 부담이다.
철학적 선택과 마케팅 전략
1. 밸런스에 대한 철학
많은 증류소들은 피트가 위스키의 전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라프로익의 경우 45ppm 정도의 맥아를 사용하지만, 최종 위스키에서는 피트, 바닐라, 요오드, 단맛이 조화를 이룬다.
아드벡은 50-55ppm을 사용하며, 이를 통해 베이스 스피릿과 오크 캐스크의 풍미가 피트와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본다.
2. PPM 경쟁의 의미
아드벡의 미키 헤드는 “슈퍼노바를 만들 때 초고 피팅 맥아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특정 캐스크들을 선별한다”고 밝혔다.
즉, 단순히 맥아 PPM만 높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브룩라디의 아담 하넷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하게 피팅된 위스키를 만들려는 게 아니라, 피트, 숙성, 보리 품종, cask 타입의 완벽한 연금술을 보여주는 특별한 드램을 만들려는 것이다.”
시장과 소비자 선호도
초고 PPM 위스키는 매우 니치한 시장이다.
옥토모어조차 전체 위스키 시장에서 극소수의 애호가들을 위한 제품이다.
대부분의 증류소는 좀 더 폭넓은 소비자층을 타겟으로 한다.
또한 옥토모어는 가격대도 높다(15.1은 약 20만원, 15.3은 40만원 이상).
이런 높은 가격은 제조 공정의 비효율성이 한 몫하고 있으며 옥토모어가 훌륭한 위스키이긴 하지만 가격대가 지나치게 높다는 평가에 한 몫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다른 증류소들이 초고 PPM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의 증류소들은 PPM 50-60 정도면 충분히 강한 피트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라프로익, 아드벡 같은 전통적인 아일라 위스키들이 이 범위고 더 높은 PPM이 반드시 더 나은 위스키를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옥토모어는 “가능한 한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실험”이라는 브룩라디의 철학이 만든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피트 위스키의 진정한 매력
피트 위스키의 재미는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피트가 어떻게 맥아에 스모키한 영혼을 불어넣는지, 그 시간이 주는 복합성과 떼루아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옥토모어는 300ppm이 넘는 초고 PPM 위스키를 통해 피트가 위스키에 어디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매번 실험적 라인업을 내놓으며 피트에 호기심이 가득한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있다.
다음에 피트 위스키를 마실 때, 그 한 모금에 담긴 자연의 시간과 장인의 기술을 느껴보자.아일라의 습지에서 수백 년간 자란 피트, 킬른에서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 증류사의 신중한 컷 포인트 결정, 그리고 오크통 속에서의 느린 변화까지, 이 모든 것이 모여 우리가 사랑하는 피트 위스키의 스모키한 풍미를 만들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