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술 사케 등급, 특정명칭주 (준마이, 혼죠조, 긴죠, 다이긴죠)

목차

사케 등급을 나누는 기준, 특정명칭주(特定名称酒)

일본 술 사케 등급, 특정명칭주 (준마이, 혼죠조, 긴죠, 다이긴죠) , 사케 특정명칭주 칠판 짤 scaled

사케 병을 처음 들여다보면 준마이, 긴죠, 다이긴죠 같은 단어부터 눈에 들어온다. 이게 바로 사케 등급이다.

정식 명칭은 특정명칭주(特定名称酒, 토쿠테이 메이쇼슈)다. 일본 국세청이 정한 원료와 제법 요건을 충족한 술만 이 이름을 라벨에 쓸 수 있다.

근거는 1989년 11월에 제정되어 1990년 4월부터 적용된 「청주의 제법품질표시기준」이다. 그 전에는 품질이 아니라 세금으로 매겨지던 전혀 다른 등급 제도가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뒤에서 따로 다룬다.

사케 등급을 가르는 축은 크게 세 가지다.

  • 원료 : 쌀·코지(입국)·물만 썼는가(준마이 계열), 양조알코올을 소량 더했는가(비준마이 계열)
  • 정미보합 : 쌀을 얼마나 깎아냈는가
  • 제법 : 저온에서 천천히 발효시키는 긴죠 양조를 적용했는가

이 세 축을 조합하면 모두 8종이 나온다. 여기에 모든 특정명칭주가 공통으로 지켜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

농산물검사법상 3등 이상으로 판정된 현미를 써야 하고, 전체 백미 중 코지를 만드는 데 쓴 쌀(코지미)의 비율이 15% 이상이어야 한다. 향미와 색택이 양호해야 한다는 조건도 함께 따라온다.

등급원료정미보합추가 요건
준마이 다이긴죠 純米大吟醸쌀·코지·물50% 이하긴죠 양조, 향미와 색택이 특히 양호
준마이긴죠 純米吟醸쌀·코지·물60% 이하긴죠 양조
토쿠베츠 준마이 特別純米쌀·코지·물60% 이하 또는 특별 제법특별한 이유를 라벨에 설명
준마이 純米쌀·코지·물규정 없음2004년 정미보합 요건 폐지
다이긴죠 大吟醸쌀·코지·물·양조알코올50% 이하긴죠 양조, 향미와 색택이 특히 양호
긴죠 吟醸쌀·코지·물·양조알코올60% 이하긴죠 양조
토쿠베츠 혼죠조 特別本醸造쌀·코지·물·양조알코올60% 이하 또는 특별 제법특별한 이유를 라벨에 설명
혼죠조 本醸造쌀·코지·물·양조알코올70% 이하–

한자로 알아보는 사케 등급

사케 등급 이름은 한자를 한 글자씩 뜯어보면 이해가 쉽다.

용어한자글자 뜻
준마이純米순미. 순수할 순에 쌀 미. 말 그대로 순수하게 쌀로만 빚었다는 뜻이다
혼죠조本醸造본양조. 본격적으로 제대로 빚었다는 뜻. 전후의 부실한 증량 술과 선을 긋기 위해 붙은 이름이다
긴죠吟醸음양. 읊을 음에 빚을 양. 시를 읊듯 공들여 음미하며 빚는다는 뜻이다
다이긴죠大吟醸대음양. 긴죠 앞에 클 대가 붙었다. 더 극진하게 빚었다는 뜻
토쿠베츠特別특별. 국내에서는 특별준마이, 특별혼조조로도 부른다
정미보합精米歩合정미는 쌀을 깎아 다듬는 것, 보합은 비율. 깎고 남은 비율을 가리킨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름에 순미가 들어가면 쌀로만 빚은 술이고, 음양이 들어가면 저온에서 공들여 빚은 술이다. 이 두 글자만 알아도 사케 등급표의 절반은 읽힌다.

정미보합 60%는 무슨 뜻일까

정미보합(精米歩合, 세이마이부아이)은 현미 무게 대비 남은 백미 무게의 비율이다. 60%라면 쌀알 바깥을 40% 깎아냈다는 뜻이다. 우리가 밥으로 먹는 쌀은 92% 안팎이다.

쌀의 겉층과 배아에는 단백질, 지방, 회분, 비타민이 몰려 있다. 발효에 필요한 성분이지만 너무 많으면 잡미와 거친 향이 된다. 그래서 숫자가 작을수록 많이 깎은 술이라고 기억하면 된다.

사케 등급을 결정짓는 두가지 기준

표가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 사케는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등급을 나눈다. 첫 번째가 준마이냐 아니냐, 두 번째가 정미보합에 따라 갈리는 긴죠, 다이긴죠, 혼죠조, 후쓰슈다.


준마이 — 순 쌀로 만든 사케 등급

일본 술 사케 등급, 특정명칭주 (준마이, 혼죠조, 긴죠, 다이긴죠) 1, 다양한 사케 진열 나열 scaled

먼저 첫 번째 기준부터 살펴보자. 이름에 준마이(純米, 순미)가 들어간 사케는 모두 쌀, 코지, 물 세 가지만 원료로 쓴다. 효모가 발효로 만들어낸 알코올 외에 따로 주정을 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대로 준마이라는 단어가 없는 특정명칭주는 발효 막바지의 술덧(모로미)에 양조알코올을 소량 넣는다. 양조알코올은 전분질이나 당질 원료를 발효·증류해 만든 알코올이며, 합성 알코올은 쓸 수 없다.

허용량은 백미 중량의 10% 이하다. 쌀 1톤당 약 120리터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준마이 — 정미보합 규정이 없는 유일한 등급

일본 술 사케 등급, 특정명칭주 (준마이, 혼죠조, 긴죠, 다이긴죠) 2, 카제노모리 아키츠호 657 준마이 scaled
카제노모리 아키츠호 657 (준마이)

준마이에는 원래 정미보합 70% 이하라는 조건이 있었다. 2004년 1월 개정으로 이 조건이 사라졌고, 대신 모든 특정명칭주에 코지미 15% 이상이라는 요건이 새로 붙었다.

그 이유는 기술의 발전에 있다. 양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미보합이 높은 쌀을 써도 좋은 품질의 술을 만들 수 있게 됐는데, 쌀과 코지와 물만 쓰고도 쌀을 25%밖에 안 깎았다면 준마이슈로 팔 수 없었다.

양조장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그래서 라벨에 ‘쌀만으로 만든 술(米だけの酒)’이라고 따로 적어 넣었다. 법적 등급 이름은 아니지만 사실을 적은 것이니 문제될 게 없었다.

문제는 소비자 쪽이었다. 진열대에 준마이와 ‘쌀만으로 만든 술’이 나란히 놓여 있는데 둘 다 쌀로만 빚었다고 하니, 무엇이 다른지 알 방법이 없었다.

여기에 정미 기술까지 발전하면서 70%보다 덜 깎은 쌀로도 잡미 없는 술을 만들 수 있게 됐다. 70%라는 선을 유지할 명분이 약해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정미보합 80%, 90%짜리 준마이도 당당히 존재한다. 준마이는 대체로 산도가 조금 높고 감칠맛과 곡물 풍미가 뚜렷한 편이다. 데워도 맛이 무너지지 않아 아츠캉으로도 자주 쓰인다.

토쿠베츠 준마이 — 가장 모호하면서 가장 흥미로운 등급

일본 술 사케 등급, 특정명칭주 (준마이, 혼죠조, 긴죠, 다이긴죠) 3, 덴슈 토쿠베츠 준마이 scaled
덴슈 토쿠베츠 준마이

토쿠베츠 준마이(特別純米, 특별준마이)는 준마이 가운데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술이다. 정미보합 60% 이하이거나, 특별한 제조 방법을 썼거나 둘 중 하나를 충족하면 된다.

특별 제법을 근거로 삼았다면 원료나 제조 방법 같은 객관적 사실로 라벨에 설명해야 한다. 실제로는 긴죠급인 60% 이하로 깎았거나, 주조호적미(사카마이)를 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등급이 생기는 데는 마케팅 사정도 있다. 이미 잘 팔리는 준마이와 준마이긴죠가 있는 양조장에서 새 제품을 하나 더 내놓으려 할 때, 기존 제품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이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토쿠베츠가 붙은 술에는 양조장의 판단과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규정이 느슨한 만큼 무엇을 특별하다고 볼지 양조장이 직접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긴죠급 쌀을 쓰면서도 화려한 향에 기대지 않고 식중주로 설계한 술이 이 자리에 많이 모인다. 긴죠 계열의 화려한 향의 상당 부분은 효모가 만든다. 같은 계열의 효모를 쓰면 어느 양조장 술이든 비슷한 방향의 향이 나고, 그 향이 나머지 특징을 덮어버린다.

반대로 향에 기대지 않으면 가릴 것이 없어진다. 쌀 선택, 코지 만드는 법, 주모 방식, 발효 온도, 압착 시점, 숙성 기간이 고스란히 맛에 남는다. 토쿠베츠 자리에 식중주로 설계한 술이 많이 모이는 이유이자, 양조장의 성격이 궁금할 때 다이긴죠보다 이쪽을 먼저 권하는 이유다.

양조알코올은 왜 넣을까

흔히 알코올 첨가를 싸구려 증량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특정명칭주에서 양조알코올을 넣는 목적은 전혀 다르다.

  • 향 추출 : 술덧 속 향기 성분 상당수가 알코올에 녹는다. 압착 직전 알코올 농도를 올리면 이 성분을 더 많이 끌어낼 수 있다.
  • 가벼운 맛 : 뒷맛을 깔끔하게 끊어준다. 혼죠조가 데워 마시기 좋은 이유 중 하나다.
  • 안정성 : 사케의 향미를 상하게 하는 젖산균인 히오치균(火落菌)의 증식을 막는다.

알코올을 넣은 뒤에는 물을 더해 도수를 다시 낮춘다. 중간에 도수가 한 번 올라갔을 뿐 최종 도수는 다른 사케와 비슷하니, 주정강화주는 아니다.

준마이만이 진짜 사케라고 주장하는 순수주의자도 있다. 하지만 17세기부터 증류주를 더해 술을 보강하던 기록이 남아 있고, 어느 쪽이 무조건 낫다는 정답은 없다.

일본의 양조알코올과 한국의 주정은 같은 것일까

기준은 사실상 같다. 한국 주세법의 주정도 전분질이나 당질 원료를 발효시켜 증류한 것을 말한다. 석유계 에틸렌에서 뽑아낸 합성 주정은 공업용으로만 쓸 수 있어 술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원료도 비슷해서 양쪽 다 수입 당밀과 타피오카 비중이 크다.

다른 건 쓰임새다. 일본의 양조알코올은 완성된 술덧에 소량 더하는 보조 재료이고, 특정명칭주라면 백미 중량의 10%를 넘길 수 없다. 반면 한국의 주정은 희석식 소주에서 알코올 그 자체다. 유통 구조도 달라서 국내 주정은 전량 대한주정판매를 통해서만 거래된다.

긴죠, 다이긴죠, 혼죠조— 정미보합에 따른 사케 등급

일본 술 사케 등급, 특정명칭주 (준마이, 혼죠조, 긴죠, 다이긴죠) 4, 사케 쌀 정미보합 도정율 scaled

두 번째 기준은 정미보합이다. 쌀을 얼마나 깎았는지에 따라 70%, 60%, 50% 세 개의 선이 그어지고, 그 선마다 이름이 달라진다.

여기서 나오는 혼죠조, 긴죠, 다이긴죠는 양조알코올을 넣은 쪽의 이름이다. 같은 선을 넘으면서 쌀로만 빚었다면 앞에 준마이를 붙인다. 두 기준을 겹쳐 읽는 방식이다.

혼죠조와 토쿠베츠 혼죠조

일본 술 사케 등급, 특정명칭주 (준마이, 혼죠조, 긴죠, 다이긴죠) 5, 핫카이산 토쿠베츠 혼죠조 scaled
핫카이산 토쿠베츠 혼죠조

혼죠조(本醸造, 본양조)는 정미보합 70% 이하의 쌀에 양조알코올을 더한 술이다. 토쿠베츠 혼죠조는 준마이 쪽과 마찬가지로 60% 이하로 깎았거나 특별 제법을 쓴 경우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등급이다. 산뜻하고 가벼워서 매일 곁들이는 반주나 데운 술에서 강점을 보인다.

긴죠와 다이긴죠

일본 술 사케 등급, 특정명칭주 (준마이, 혼죠조, 긴죠, 다이긴죠) 6, 데와자쿠라 오우카 긴죠슈 scaled
데와자쿠라 오우카 긴죠

긴죠(吟醸)는 60% 이하, 다이긴죠(大吟醸)는 50% 이하로 깎은 쌀을 긴죠 양조로 빚고 양조알코올을 더한 술이다.

알코올 사용량 제한은 혼죠조와 같지만 ‘혼죠조 긴죠’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냥 긴죠, 다이긴죠다. 알코올을 넣은 다이긴죠는 향이 더 또렷하게 뜨고 맛이 가벼워서, 오랫동안 품평회 출품주의 주류를 이뤘다.

준마이긴죠와 준마이 다이긴죠

일본 술 사케 등급, 특정명칭주 (준마이, 혼죠조, 긴죠, 다이긴죠) 7, 호우오우비덴 준마이 다이긴죠 scaled
호우오우비덴 준마이 다이긴죠 사케미라이 히이레

두 기준을 겹치면 이름이 길어진다. 준마이면서 60% 이하면 준마이긴죠, 준마이면서 50% 이하면 준마이 다이긴죠다. 긴죠 양조로 빚어야 한다는 조건은 양쪽 모두 같고, 다이긴죠 쪽에는 고유의 향미와 색택이 ‘특히’ 양호해야 한다는 조건이 한 줄 더 붙는다.

다이긴죠 기준이 ‘50% 이하’이다 보니 50%로 깎은 술과 23%로 깎은 술이 똑같은 사케 등급 이름을 달고 나온다. 국내에서 선물용 사케로 유명한 아사히주조의 최고급 준마이 다이긴죠 사케인 닷사이 23이 이에 해당한다.

정미보합 규정이 아예 없는 자리도 있다. 특정명칭주 요건을 채우지 못한 사케는 모두 후쓰슈(보통주)로 분류되는데, 이쪽은 뒤에서 따로 다룬다.

긴죠 양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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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마이긴죠, 긴죠, 준마이 다이긴죠, 다이긴죠 네 가지를 묶어 긴죠슈라고 부른다. 그런데 긴죠는 정미보합 숫자만으로 붙는 이름이 아니다.

표시 기준 자체에 ‘긴죠 양조(吟醸造り)’로 빚을 것이 들어 있다. 쌀을 많이 깎고, 낮은 온도에서 오랜 기간 천천히 발효시키는 방식이다.

온도를 낮추면 효모 활동이 느려지는 대신 과일 같은 향기 성분인 에스테르가 많이 남는다. 긴죠의 향을 만드는 대표 성분은 두 가지다.

  • 카프로산에틸(ethyl caproate) : 사과, 배 계열의 향
  • 아세트산이소아밀(isoamyl acetate) : 바나나, 멜론 계열의 향

이 향을 긴죠향(吟醸香, 긴죠카)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향 생성을 억제하는 물질인 세룰레닌에 내성을 가진 변이 효모가 개발되면서, 카프로산에틸이 폭발적으로 나오는 술도 늘었다.

일본양조협회의 1801호 효모, 고치현의 CEL 계열 효모가 대표적이다. 1801호는 향은 강하지만 맛이 약해서, 균형 잡힌 맛과 산을 내는 협회 9호 효모와 섞어 쓰는 양조장이 많다.

다만 양조 현장에서는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효모만으로 향을 끌어올리고 저온발효 기술이 받쳐주지 못하면, 화려하지만 구조가 약해 병입 후 쉽게 변하는 술이 된다는 지적이다. 같은 사케 등급 이름을 달고도 품질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긴죠 계열 사케를 마시기 적당한 온도

긴죠 계열은 향이 생명이라 살짝 차갑게, 화이트와인 정도 온도에서 마시는 게 기본이다. 입구가 넓은 와인잔을 쓰면 긴죠향이 훨씬 잘 올라온다.

등급 밖의 사케 — 보통주와 등급 제도의 역사

일본 술 사케 등급, 특정명칭주 (준마이, 혼죠조, 긴죠, 다이긴죠) 9, 보통주 사케 scaled

특정명칭주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사케는 모두 보통주(普通酒, 후쓰슈)다. 정미보합 규정이 없고, 양조알코올도 백미 중량의 10%를 넘겨 넣을 수 있다.

일본 국세청 자료를 보면 2023 주조연도 기준 특정명칭주 비중은 약 38%다. 여전히 절반이 넘는 사케가 등급 밖에 있다는 뜻이다.

보통주라고 무조건 나쁜 술은 아니다. 지역 사람들이 매일 마시는 술이라 그 지방의 입맛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특급·1급·2급의 시대

지금의 사케 등급 체계 전에는 급별 제도(級別制度)가 있었다. 1943년 전시 세수 확보를 위해 도입됐는데, 기준은 품질이 아니라 알코올 도수와 엑기스분 같은 성분 수치였다.

결국 세금을 더 내면 높은 등급을 받는 구조였다. 특급 판정에 붙는 세금은 2급의 5배에 달해, 좋은 술을 만들고도 일부러 2급으로 파는 양조장이 적지 않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특급이 반드시 더 좋은 술이 아니었던 셈이다. 게다가 나다와 후시미 같은 전통 산지에 특급과 1급이 몰리고 다른 지방 술은 자동으로 2급이 되는 관행까지 있었다. 이 제도는 1989년 새 표시 기준이 만들어진 뒤 199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됐다.

삼배증양주 — 사케의 암흑기

전쟁 말기와 전후 쌀 부족기에는 삼배증양주(三倍増醸酒, 산바이조조슈)가 등장했다. 술덧에 주정과 물, 포도당, 산미료, 글루탐산 같은 첨가물을 넣어 같은 쌀로 술 양을 3배까지 불린 술이다.

1953년에는 전체 사케의 59.3%가 이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는 알코올을 넣지 않은 준마이가 시장에서 아예 사라졌을 정도다.

사케가 ‘머리 아픈 싸구려 술’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젊은 층이 맥주로 옮겨간 데는 이 시기의 영향이 크다. 1959년에는 맥주가 판매량에서 사케를 앞질렀다. 지금은 이 방식으로 만든 술을 청주로 표시할 수 없다.

삼배증양주와 희석식 소주는 같은 이야기일까

출발점은 닮았다. 둘 다 곡물이 부족하던 시절에 주정으로 양을 불리고 부족한 맛을 첨가물로 메운 술이다. 그 결과 해당 주종의 이미지가 오래 나빠졌다는 결말까지 비슷하다.

하지만 구조는 다르다. 삼배증양주는 정상적으로 발효시킨 술덧이 바탕에 있고, 거기에 주정과 당류를 부어 부피를 늘린 술이다. 원주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반면 희석식 소주는 발효주 자체가 없다. 타피오카나 당밀을 발효·연속증류해 얻은 95도 주정을 물로 희석하고 감미료를 더해 만든다.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쌀을 쓰는 증류식 소주가 막히면서 그 자리를 대체한 술이다.

정리하면 삼배증양주는 양조주를 늘린 것이고, 희석식 소주는 증류주를 대체한 것이다. 사케에서 삼배증양주에 해당하는 자리는 오히려 지금의 보통주에 가깝다.

특정명칭주 체계는 이런 역사를 정리하고, 소비자가 원료와 제법을 보고 술을 고를 수 있게 하려고 만들어졌다. 라벨의 사케 등급 표기에 법적 요건이 붙은 이유다.

‘쌀만으로 만든 술’인데 준마이가 아니다?

라벨에 ‘쌀만으로 만든 술(米だけの酒)’이라고 적혀 있는데 준마이 표기가 없는 경우가 있다. 원료는 쌀·코지·물뿐이지만 코지미 15% 이상, 3등 이상 검사미 같은 특정명칭주 요건 중 하나를 채우지 못한 술이다.

이런 술은 준마이 규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함께 적어야 한다. 라벨을 볼 때 작은 글씨까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한 이유다.

사케 등급이 높을수록 맛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사케 등급은 원료와 공정의 기준이지 맛의 순위가 아니다. 등급 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전문가도 맛만 보고 등급을 정확히 맞히기는 어렵다.

체계 자체의 한계도 있다. 50%로 깎아도, 1%로 깎아도 똑같이 준마이 다이긴죠다. 요즘은 아라마사(新政)나 센킨(仙禽)처럼 특정명칭을 일부러 표기하지 않는 양조장도 늘고 있다. 등급 이름이 아니라 술 자체로 평가받겠다는 태도다.

긴죠 계열의 화려한 향은 첫 잔에 인상적이지만, 여러 잔을 이어 마시면 금방 질린다는 사람도 많다. 음식과 함께 오래 마실 술이라면 준마이나 혼죠조가 더 편할 수 있다.

상황별로 사케 등급을 고르는 기준을 정리하면 이렇다.

  • 향을 즐기고 싶을 때 : 준마이 다이긴죠, 다이긴죠를 차갑게
  • 음식과 함께 오래 마실 때 : 준마이, 토쿠베츠 준마이, 혼죠조
  • 데워 마시고 싶을 때 : 준마이, 혼죠조. 특히 야마하이나 기모토 제법의 술
  • 가성비를 찾을 때 : 토쿠베츠 준마이, 토쿠베츠 혼죠조

정미보합 숫자도 방향을 잡는 데 쓸 수 있다. 숫자가 높으면 곡물감과 감칠맛이 도는 쪽이고, 낮으면 섬세하고 과일 향이 나는 쪽이다.

결국 사케 등급은 지도에 가깝다. 어디쯤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줄 뿐, 내 입에 맞는 술은 직접 마셔보면서 찾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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