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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와 약주의 정의


주세법은 청주와 약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약주는 녹말이 포함된 재료와 국(麴), 물을 원료로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해 제성한 술이다. 다만 발아시킨 곡류는 원료에서 빠진다.
청주는 곡류 중 쌀과 국, 물을 원료로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해 제성한 술이다.
문장만 보면 차이는 원료 곡물뿐이다. 쌀로만 빚는 맑은 술은 두 정의에 모두 들어맞는다.
대표적인 청주 종류와 약주 종류
이 기준을 실제 제품에 대입하면 분류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세법상 청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술은 청하와 백화수복이다. 명절에 흔히 쓰는 정종도 이쪽 계열이다.
모두 입국을 써서 빚는다. 제법으로 보면 한국에서 만든 사케에 가깝다.
반대로 한산소곡주와 백세주, 경주교동법주, 느린마을 약주는 주세법상 약주다. 누룩을 써서 빚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통주라 부르며 떠올리는 맑은 술은 대부분 이 칸에 들어가 있다.
경주법주는 조금 복잡하다. 같은 이름 아래 제품군에 따라 분류가 갈린다.
수식 없이 병입된 제품은 누룩을 써서 약주에 가깝고, 원컵이나 초특선은 입국을 쓴 청주로 나온다.
국(麴), 입국과 누룩

두 정의에 똑같이 등장하는 국(누룩 국 麴)은 누룩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 상위 개념이다. 국세청 기준으로 국에는 종국과 누룩, 입국과 조효소제, 정제효소제가 모두 포함된다.
이들의 공통된 역할은 당화다. 곡물의 전분을 당으로 쪼개는 일이다. 그 당을 효모가 알코올로 바꾸면서 비로소 술이 된다.
누룩은 익히지 않은 날곡류를 공기중의 곰팡이와 효모, 그 밖의 미생물에 노출시켜 자연스럽게 번식시킨 것이다. 곡자라고도 부른다.
반면 입국은 곡류를 쪄서 익힌 뒤 아스페르길루스 속 같은 곰팡이를 인위적으로 번식 시킨 것이다.
문장의 차이로 봤을 때 청주와 약주의 차이는 원료 곡물일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발효에 누룩을 사용했는지 입국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에 가깝다.
청주와 약주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
기준은 주세법 조문이 아니라 시행령에 있다.
쌀의 합계 중량을 기준으로 누룩을 1% 미만 사용해야 청주가 된다. 1% 이상이면 약주다.
여기서 입국과 효소제는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얼마를 쓰든 이 상한과 무관하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정상적으로 술을 빚기 위해서는 누룩을 쌀 중량의 10% 정도는 사용해야한다. 입국의 경우에는 쌀 중량의 20~30% 정도는 사용해야 한다.
제한이 없는 입국의 경우에는 주세법 상의 청주가 될 수 있지만 한국의 전통 방식인 누룩을 사용해서 맑은 술(청주)을 만들게 되면 필연적으로 약주가 될 수 밖에 없다.
제조면허도 별개다. 같은 양조장이 두 이름을 다 쓰려면 면허를 각각 받아야 한다.
| 항목 | 약주 | 청주 |
|---|---|---|
| 원료 곡물 | 녹말이 포함된 재료(발아 곡류 제외) | 곡류 중 쌀(찹쌀 포함) |
| 누룩 사용량 | 쌀 중량의 1% 이상 | 쌀 중량의 1% 미만 |
| 입국·효소제 | 제한 없음 | 제한 없음 |
| 주정 증량 | 불가 | 가능 |
| 대표 제품 | 경주교동법주, 한산소곡주 등 | 청하, 백화수복 등 |
현 주세법 아래에서 전통 방식으로 청주를 만들 수 없는 이유
밀이나 녹두로 띄운 전통 누룩은 쌀 중량의 10% 안팎을 쓴다. 개량 누룩도 2% 남짓은 필요하다. 1% 미만으로는 효율적인 당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입국은 당화력이 약해 쌀 중량의 20~30%까지 쓴다. 사용량은 몇 배나 많지만 상한 자체가 없다.
청주라는 용어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쓰였던 것으로 우리의 고유한 술의 이름이다. 하지만 전통방식으로는 주세법상의 청주를 만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 주세법 상의 분류가 문제가 되는 이유
입국은 우리 양조에 원래 있던 것이 아니다.
곡물을 쪄서 익힌 뒤 단일 곰팡이를 접종하는 방식은 일본이 대량생산에 맞게 다듬은 제법이다. 한반도에 들어온 시점은 일제강점기다.
조선의 청주는 그렇게 빚지 않았다. 날곡물로 띄운 누룩으로 발효시킨 뒤 맑게 걸러낸 술이 청주였다.
지금 주세법이 청주라 부르는 술은 일본식 사케에 가깝다.
수백 년간 청주를 만들어온 방식이 지금은 청주 자격을 잃는다. 조선의 청주는 오늘날 전부 약주로 분류된다.
정리하면 이렇다. 청주라는 칸에는 일본에서 온 제법이 들어앉았고, 우리 방식으로 빚은 맑은 술은 약주라는 다른 칸으로 밀려났다.
여기에 청주는 주정을 넣어 양을 늘리는 것까지 허용된다.
전통적인 의미의 청주와 약주

법적 정의를 확인했으니 이제 원래 쓰임을 보자.
전통적으로 청주(淸酒)는 말 그대로 맑은 술이었다. 탁주(濁酒)가 탁한 술이니 그 반대편에 놓이는 자연스러운 짝이다.
탁주를 빚은 뒤 용수를 박아 위에 고인 맑은 부분을 떠내거나, 고운 천으로 지게미를 걸러내면 청주가 됐다.
제사 축문의 마지막 구절에 맑은 술을 올린다는 표현이 들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곡물 외에 부재료를 넣지 않은 것은 순곡 청주, 약재나 꽃 같은 재료를 더한 것은 약주로 구분하는 용법도 있었다.
약주라는 이름의 세 가지 유래
첫째는 가장 직관적인 설명이다. 약재를 넣었거나 약효가 있다고 여겨진 술을 약주라 불렀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물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조선 선조 때 문신 서성의 호가 약봉(藥峰)이었고, 집이 약현(藥峴), 지금의 서울 중림동에 있었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약산춘(藥山春)을 다루며, 서성이 즐겨 빚었고 집이 약현에 있어 그 이름이 붙었다고 적었다.
그 집 술을 약봉주, 약현주라 부르다 약주로 줄었다는 이야기다. 1937년 동아일보에도 이 설이 실렸다.
다만 반론이 있다. 태종실록 1405년 기록에 이미 약주가 등장한다. 서성보다 150년 넘게 앞서니 순서가 맞지 않는다.
셋째는 높임말 설이다. 술을 약이라 부르며 마시던 관행, 윗사람의 술을 높여 부르던 표현에서 굳어졌다는 해석이다.
실록이 보여주는 두 단어의 쓰임
이대형 박사는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두 단어의 용례를 살폈다. 약주는 52회, 청주는 108회 등장한다.
중요한 건 횟수가 아니라 맥락이다. 약주는 임금의 건강을 염려해 술을 권하는 장면이나 하사품에서 주로 나온다.
청주는 하사품과 사직 제사 같은 의례적 상황에 자주 쓰였다.
이 기록을 근거로, 약주가 윗사람에게 올리는 술을 높여 부르던 표현에 가까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제가 조선 술을 낮추려고 약주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통설과는 결이 다른 시각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약주라는 단어 자체가 비하의 의미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단어의 뜻이 아니라, 일본 술과 우리 술을 다른 칸에 넣어 관리한 분류 방식이 그대로 굳어졌다는 데 있다.
약주라는 이름이 주는 한계

법의 정의와 전통의 용법이 어긋나면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넘어온다.
약재가 든 술이라는 오해
매대에서 약주라고 적힌 병을 본 사람은 대개 한약재나 건강 기능이 있는 담금주 같은 술을 연상한다.
실제 내용물은 쌀과 누룩으로 빚어 맑게 거른 술이다. 법 정의 어디에도 약재나 효능에 관한 문구는 없다.
더 얄궂은 건 인삼을 넣어 빚은 술은 약주가 아니라 리큐르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술을 약용으로 마신다는 건 현대에 들어서는 어불성설이다. 술은 어디까지나 기호식품의 영역이지 건강에는 백해무익하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이다.
결국 이름이 주는 오해로 약주는 어르신분들이 좋아하는 씁쓸하고 한약같은 맛이 날 것 같은 담금주의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한다.
젊은 소비자층에게 어필하기에는 지나치게 장벽이 높다.
탁주의 짝이 사라졌다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지적이 하나 있다. 탁주의 대칭 개념은 약주가 아니라 청주여야 한다는 것이다.
탁한 술과 맑은 술이라는 한 쌍이 자연스러운데, 현행 분류에서는 한 축의 이름만 다른 계열로 빠져 있다.
해외에서는 그냥 사케가 된다
수출 현장에서의 문제도 있다. 한국의 맑은 쌀 술을 옮길 마땅한 이름이 없다.
국제적으로 통하는 청주라는 단어는 이미 사케가 점유했고, 약주는 직역하면 약용주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한국식 청주까지 뭉뚱그려 사케로 불리는 일도 흔하다.
제품의 정체성을 설명할 이름이 없다는 건, 카테고리를 만들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청주와 약주 분류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

지금의 분류가 만들어진 시점은 비교적 분명하다.
1909년 대한제국 말기에 주세법이 제정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간접세이자 술 빚기에 대한 국가 통제의 출발점이었다.
본격적인 전환은 1916년이다. 조선총독부가 그해 7월 주세령을 제정하고 9월 발령하면서 주종 체계가 새로 짜였다.
이때 조선의 술은 탁주와 약주, 재래식 소주로 묶였고 일본의 술은 청주가 됐다. 청주라는 이름이 옮겨간 지점이 여기다.
주세령은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집에서 빚는 가양주에도 면허를 요구하며 문화 자체를 압박했다.
1919년 9만 명이던 주조업자는 1930년 4천 명으로 줄었다. 1934년에는 가정용 제조면허 제도가 폐지됐다.
해방 이후에도 이 분류는 거의 손대지 않은 채 이어졌다. 지금의 약주와 청주 구분은 그 유산이다.
명절 차례상의 ‘정종(正宗)’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정종은 1840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술 이름 마사무네(正宗)이고, 1883년 부산의 한 일본인이 운영하는 양조장에서 해당 술의 이름을 따 조선에서 처음 생산했다.
쌀이 귀하던 시절 쌀로 빚는 청주는 고급술로 인식됐고, 그 이미지가 제사술 자리에 그대로 굳었다.
거론되는 개선 방향
가장 많이 언급되는 안은 맑은 술을 모두 청주류로 묶고, 그 안에서 한국청주와 일본청주로 나누는 방식이다.
주세법상으로는 청주 하나로 두되 행정상으로만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소주가 이미 그렇게 운영된다.
주세법에 위스키와 브랜디 항목이 따로 있듯, 사케 항목을 신설하자는 의견도 오래 이어져 왔다.
물론 기존 청주 제조사의 반발이라는 현실적인 벽이 있다. 세율과 면허 체계까지 함께 손봐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분명한 건 단어는 쓰일수록 굳어지고, 굳어질수록 되돌리기 어려워진다.
백 년 넘게 이어진 이름 하나 때문에, 지금도 우리 술을 설명하려면 법부터 해명해야 한다.
술을 고르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결국 이미지와 헤리티지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바로 잡는 게 좋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