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 있다. 바로 더 페이머스 그라우스(The Famous Grouse)다. 가난한 자의 맥캘란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이 Blended 스카치는 1980년부터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Whiskey 자리를 지켜온 스코틀랜드인들의 일상에 깊이 스며든 국민 위스키라 할 수 있다.
뇌조(Grouse)가 그려진 상징적인 라벨(한국에선 이 때문에 뇌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뒤에는 130년이 넘는 역사와 장인 정신이 담겨 있다. 하이랜드 파크, 글렌로시스, 맥캘란 같은 명문 증류소의 싱글 몰트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균형 잡힌 맛은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페이머스 그라우스의 역사

페이머스 그라우스의 이야기는 1800년대 초 스코틀랜드 퍼스(Perth)에서 시작된다. 창업자 매튜 글로그(Matthew Gloag)는 애솔 스트리트 22번지에서 식료품점 겸 와인 상점을 운영하며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수입한 와인과 포트를 전문으로 취급했다. 그의 명성은 1842년 빅토리아 여왕이 퍼스를 방문했을 때 왕실 연회용 와인을 공급하는 영광을 안으면서 더욱 높아졌다.
1860년 아들 윌리엄 글로그가 가업을 이어받았고, 회사의 운명을 바꾼 전환점은 1875년에 찾아왔다. 프랑스 포도밭을 황폐화시킨 필록세라(Great French Wine Blight) 사태로 와인 공급이 급감하자, 글로그 가문은 새로운 사업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블렌디드 위스키 제조였다.
1896년, 윌리엄의 조카 매튜 글로그(1850-1912)가 가업을 물려받으면서 ‘더 그라우스(The Grouse)’라는 이름의 블렌디드 위스키를 처음 선보였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역에서 들꿩 사냥이 인기 있는 스포츠였던 만큼, 사냥 후 마시는 위스키라는 콘셉트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1905년 이 위스키는 큰 인기에 힘입어 ‘더 페이머스 그라우스(The Famous Grouse)’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매튜의 딸 필리파(Phillippa)가 직접 그린 붉은 뇌조 그림이 라벨에 사용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상징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완성되었다.
1970년 글로그 가문이 하이랜드 디스틸러스(Highland Distillers)에 회사를 매각한 후, 본격적인 마케팅과 유통망 확장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80년에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위스키가 되었고, 1984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를 수여받는 영예를 안았다. 현재는 에드링턴 그룹(Edrington Group)이 소유하고 있으며, 2024년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William Grant & Sons)로의 매각이 합의되어 2025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뇌조의 심장, 하이랜드 파크와 글렌로시스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의 본질은 여러 증류소의 개성을 하나의 조화로운 맛으로 융합하는 데 있다. 페이머스 그라우스에 사용되는 핵심 싱글 몰트로는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 글렌로시스(Glenrothes), 그리고 맥캘란(Macallan)이 알려져 있다. 모두 에드링턴 그룹이 소유한 증류소들로, 각각의 고유한 특성이 페이머스 그라우스의 맛 프로필에 기여한다.
하이랜드 파크는 오크니 제도의 독특한 피트를 사용하여 헤더 꿀과 스모키함이 어우러진 풍미를 선사한다. 이 증류소는 자체 플로어 몰팅을 통해 맥아의 약 20%를 생산하며, 약 20ppm 페놀 수준의 피팅을 거친다. 글렌로시스는 과일향과 셰리 캐스크의 달콤함을, 맥캘란은 풍부한 바디감과 복합적인 과일 향을 더한다. 이러한 몰트 위스키들이 그레인 위스키와 결합되어 페이머스 그라우스 특유의 부드럽고 균형 잡힌 맛이 탄생한다.
블렌딩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메링(Marrying) 과정이다. 이것은 블렌딩 직후에 수행되는 전통적인 과정으로, 서로 다른 위스키들이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숙성 또는 휴지를 거치는 것을 말한다. 페이머스 그라우스는 46% ABV에서 최대 6개월간 메링 과정을 거친다.
페이머스 그라우스 전체 라인업

페이머스 그라우스는 오리지널 블렌드 외에도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확장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각 제품은 고유한 캐스크 피니싱이나 블렌딩 방식을 통해 차별화된 맛 프로필을 제공한다.
페이머스 그라우스 오리지널 (The Famous Grouse Original)

뇌조 혹은 금뇌조. 브랜드의 근간이 되는 스탠다드 블렌드로, 40% ABV로 출시된다. 황금빛 색상에 과일향과 오크의 균형이 특징이다. 셰리 캐스크와 bourbon 배럴에서 숙성된 위스키들이 블렌딩되어 캔디드 프룻, 버터 쇼트브레드, 시트러스 필의 향이 나며, 부드럽고 따뜻한 깊이감에 밝은 과일 노트가 어우러진다. 스무스하고 완벽하게 균형 잡힌 피니시가 인상적이다.
페이머스 그라우스 뚜껑 여는 법
처음 구매한 사람들이 겪는 당황스러운 순간이 있다. 뚜껑을 열었는데 위스키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는 위조 방지 및 재충전 방지를 위한 논-리필러 캡(Non-Refiller Cap) 때문이다. 병목 안쪽에 플라스틱 마개가 하나 더 있어서 한 번 따른 위스키를 다시 병에 넣을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사실 이 마개를 제거할 필요는 전혀 없다. 병을 살짝 기울인 상태에서 병목 부분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세 번 두드리면 위스키가 잘 나온다. 너무 세게 기울이거나 급하게 따르려 하면 오히려 잘 안 나오니, 여유를 갖고 천천히 따르는 것이 요령이다.
페이머스 그라우스 스모키 블랙 (The Famous Grouse Smoky Black)

2007년 스웨덴 시장을 위해 처음 개발된 피티드 버전으로, 원래 ‘블랙 그라우스(The Black Grouse)’라는 이름이었다가 2015년 현재 이름으로 리브랜딩되었다. 한국에서 불리는 별명은 흑뇌조. 라벨에는 붉은 뇌조 대신 검은 뇌조가 그려져 있다.
이 제품에는 글렌터렛(Glenturret)의 피티드 몰트와 아일라 몰트 위스키가 추가로 블렌딩된다. 피트 연기의 화학적 조성은 매우 복잡하다. 주요 성분은 페놀, 크레졸, 구아이아콜, 그리고 다양한 폴리페놀류로, 일부는 매우 낮은 향 역치를 가져 풍미에 큰 영향을 미친다. 피팅 정도는 업계에서 페놀 ppm(parts per million)으로 측정되며, 스모키 블랙은 하이랜드 스타일의 그린 피트 노트가 특징이다.
스모키 블랙은 젖은 이끼 향과 가벼운 피트 스모크, 멀리서 느껴지는 사과 향이 코에서 먼저 다가온다. 입안에서는 훈연 오크와 건과일, 베이킹 스파이스가 느껴지며, 피니시는 대부분의 블렌드보다 길고 부드러우며 약간의 바다 소금 뉘앙스가 있다. 피티드 위스키 입문자에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페이머스 그라우스 버번 캐스크 (The Famous Grouse Bourbon Cask)

2018년 캐스크 시리즈의 첫 번째로 출시된 제품이다. 아메리칸 오크와 퍼스트 필 버번 캐스크에서 주로 숙성된 위스키들로 블렌딩된다. 버번 배럴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토스티한 우드, 신선하게 자른 목재, 그리고 약간의 베이컨 지방 노트가 코에서 느껴진다.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Quercus alba)로 만들어진 버번 배럴은 내부가 차링(charring) 처리되어 있다. 이 Charing 과정에서 캐스크 껍질 내부는 230~260°C로 가열된 후 불에 태워 원하는 정도의 차르 층을 형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차르 층과 그 아래의 Toasting 층은 숙성 중 바닐라, 토피, 캬라멜 풍미를 위스키에 부여한다.
페이머스 그라우스 루비 캐스크 (The Famous Grouse Ruby Cask)

캐스크 시리즈의 두 번째 제품으로, 포트 와인 시즈닝 캐스크에서 피니싱을 거친다. 원래 영국 슈퍼마켓 체인 세인즈버리(Sainsbury’s) 전용으로 출시되었다가 이후 일반 판매로 확대되었다.
피니싱의 목적은 원래 숙성에 사용된 캐스크와 다른 유형의 캐스크가 가진 풍미 특성을 활용하여 특정 스카치 위스키의 감각적 특성에 또 다른 차원을 부여하는 것이다. 루비 캐스크는 브라운 슈가, 건조 과일, 레이즌, 바닐라의 풍미가 더해져 오리지널보다 더 달콤하고 풍성한 맛 프로필을 보여준다.
페이머스 그라우스 셰리 캐스크 피니시 (The Famous Grouse Sherry Cask Finish)

2022년 출시된 제품으로, 더 높은 비율의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를 포함하고 세컨드 필 셰리 캐스크에서 최대 6개월간 추가 피니싱을 거친다.
셰리 캐스크는 스코틀랜드와 아메리칸 오크 두 종류로 제작될 수 있으며, 각각 다른 풍미 특성을 부여한다. 유러피안 오크 셰리 캐스크는 높은 수준의 색상과 추출물을 생성하며 뚜렷한 바닐라, 과일, 달콤한 향을 제공한다. 반면 아메리칸 오크 셰리 캐스크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플로럴한 위스키를 만들어낸다. 셰리 캐스크 피니시는 셰리의 달콤함이 확실히 느껴지며, 캬라멜, 바닐라, 후추, 우드 노트가 특징이다.
네이키드 그라우스 / 네이키드 몰트 (The Naked Grouse / Naked Malt)

2011년 페이머스 그라우스의 프리미엄 라인으로 첫 출시된 네이키드 그라우스는 라인업 중 가장 흥미로운 변천사를 가진 제품이다. 처음에는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로 시작했으나, 2017년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로 전환되었고, 2021년에는 ‘네이키드 몰트(Naked Malt)’로 완전히 리브랜딩되었다. 한국에서는 ‘벗뇌조’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다.
‘네이키드(Naked)’라는 이름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라벨이 없이 유리병에 뇌조가 직접 에칭된 미니멀한 병 디자인을 뜻하고, 둘째는 위스키를 한 번도 담은 적 없는 ‘벌거벗은’ 퍼스트 필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서 피니싱한다는 의미다. 이 캐스크들은 셰리만 담았다가 바로 위스키 숙성에 사용되므로, 셰리의 풍미가 가장 온전하게 전달된다.
블렌디드 몰트로 전환된 이후 그레인 위스키 없이 100% 몰트 위스키만으로 구성된다. 사용되는 싱글 몰트에는 맥캘란(Macallan),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 글렌로시스(Glenrothes), 글렌터렛(Glenturret)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리지널 페이머스 그라우스보다 이들 프리미엄 몰트의 비중이 높으며, 퍼스트 필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서 최소 6개월간 추가 숙성을 거친다.
테이스팅 프로필을 살펴보면, 코에서는 버터 토피와 스위트 스파이스가 먼저 다가오고, 체리, 자두 같은 스톤 프룻 향이 중심을 잡는다. 입안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크리미한 마우스필이 느껴지며, 바닐라, 스튜드 프룻, 레이즌, 설타나, 라즈베리 잼의 달콤함이 펼쳐진다. 피니시는 미디엄 길이로 오크와 코코아 노트가 은은하게 남으며, 아주 미세한 스모크가 꼬리를 잡는다. 2020년 인터내셔널 스피릿 챌린지 금상, 2019년 샌프란시스코 월드 스피릿 컴피티션 더블 골드를 수상한 검증된 품질의 위스키다.
셰리 영향을 좋아하지만 싱글 몰트 가격이 부담스러운 애호가들에게 네이키드 몰트는 훌륭한 대안이 된다. 글렌드로낙 12년과 비교해도 맛의 방향성이 비슷하면서 가격은 절반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니트로 마시기에도 좋고, 체리 콜라와 섞어 ‘세션 위스키’로 즐기는 것도 공식적으로 추천되는 음용법이다.
| Product Name | ABV | characteristic | Recommended way to drink |
|---|---|---|---|
| 오리지널 | 40% | 균형 잡힌 과일향, 부드러운 바디 | Highball, on the rocks |
| Smoky Black | 40% | 피트 스모크, 건과일, 스파이스 | 니트, 소량의 물 추가 |
| 버번 캐스크 | 40% | 바닐라, 캬라멜, 토스티 오크 | 온더락, 칵테일 |
| 루비 캐스크 | 40% | 포트 와인 피니시, 건조 과일, 달콤함 | 니트, 디저트 페어링 |
| 셰리 캐스크 피니시 | 40% | 셰리 달콤함, 바닐라, 스파이스 | Knits, On the Rocks |
| 네이키드 몰트 | 40%/43% | 퍼스트 필 셰리, 크리미, 스톤 프룻 | 니트, 체리 콜라 하이볼 |
1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페이머스 그라우스는 스코틀랜드 위스키 문화의 살아있는 증거다. 매튜 글로그가 첫 블렌드를 만들던 때부터 지금까지, 품질과 일관성에 대한 약속은 변하지 않았다. 위스키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든, 오랜 애호가이든, 페이머스 그라우스는 언제나 믿고 선택할 수 있는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로 남아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