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는 두물머리의 고장이다. 물이 좋기로 이름난 이 땅은 오래전부터 술 빚기에 어울리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양평의 술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호랭이 술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허가 없이 몰래 빚던 밀주를 가리키던 은어였다.
쌀과 누룩, 엿기름과 솔잎을 넣어 만들던 약주 스타일의 이 술은 본래 강원도 정선 강릉최씨 집안의 가양주였는데, 그 집 여인이 양평으로 시집오면서 이 고장의 토속주로 뿌리내렸다고 전해진다.
안타깝게도 지금 양평에서 이 호랭이 술을 빚는 양조장은 없다. 밀주라는 이름으로 숨죽여 이어지던 그 맥은 어느새 기억 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언젠가 이 고장의 누군가가 호랭이 술을 되살려, 술을 술이라 부르지 못하던 시절의 맛을 다시 잔에 담아주기를 바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늘의 양평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막걸리부터 통밀 증류주, 국화막걸리, 벌꿀와인까지 여러 양조장에서 여러 갈래의 술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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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양조장 (지평주조)
양평 지평면의 한옥 한 채는 오로지 술을 빚기 위해 지어졌다. 1925년에 세워진 지평양조장,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문을 열어 6·25 전쟁을 거치는 동안에도 술 빚기를 멈추지 않았다. 지평리 전투 당시에는 이 건물이 유엔군의 지휘소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2014년 등록문화재 594호로 지정됐고, 지금은 4대째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 2025년 창업 100주년을 맞아 양조장을 관람 공간으로 새로 열었다.
오늘날 지평의 술은 양평 본가를 넘어 여러 곳에서 빚어질 만큼 규모가 커졌지만, 그 시작과 뿌리는 이 지평면 한옥에 있다.
지평생막걸리

지평생막걸리는 대형마트 냉장고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국민 막걸리다. 6도의 부드러운 도수에 산뜻하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단맛을 내기 위해 수크랄로스와 아세설팜칼륨 같은 감미료를 쓴다. 대중적인 입맛에 맞춘 선택으로, 누구에게나 무난하게 다가가는 술이다.
지평소주

2025년 지평주조가 처음 선보인 증류식 소주다. 막걸리로 쌓은 100년의 기술을 증류의 영역으로 옮긴 도전이다. 쌀 한 가지가 아니라 쌀·보리·수수 세 곡물을 함께 증류해 블렌딩했다. 국내 증류식 소주 시장에서는 드문 시도다.
첫 향은 수수의 알싸함으로 시작해, 중간에 보리의 고소함이 지나가고, 끝에는 쌀의 깔끔함이 남는다. 도수는 25도로 맞췄다.
양평주조
양평주조는 친환경 양평쌀과 맑은 물, 전통 누룩으로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이다. 감미료에 기대지 않고 쌀 본연의 단맛을 끌어내는 데 무게를 둔다.
이곳의 한연옥 대표는 한국무형문화유산협회로부터 막걸리 명인(名人) 인증을 받았다. 명인은 친환경 양평쌀과 깨끗한 물, 전통 누룩만으로 자연 그대로의 맛을 담아 한국 전통주의 가치를 지켜왔다.
대중적인 가격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막걸리부터 더덕과 은행 등 양평의 특산물을 활용한 막걸리, 감미료 없이 삼양주 방식으로 담은 프리미엄 막걸리와 소주까지 제품군이 다양하다.
양평생주

양평생주는 세 번 빚는 삼양주 방식으로 만든 프리미엄 쌀막걸리다. 8도의 도수에 걸쭉하면서도 깔끔한 균형을 지녔다.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고 쌀과 발효만으로 단맛을 냈다. 덜 달고 담백해서, 건강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사랑받는다.
차게 마시면 산미가 살아나 식사 자리에 잘 어울린다.
수라주

수라주는 양평주조의 증류식 소주다. 앞의 양평생주가 삼양주 막걸리라면, 수라주는 쌀 소주다.
42도, 53도 두가지 버전을 판매하고 있으며 각각 오크통에서 숙성한 버전도 같이 판매하고 있다. 우리 곡물로 내린 소주가 서양의 오크와 만나 어떤 향을 입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술이다.
발효주와 증류주를 한자리에서 빚는 양평주조의 폭을 보여주는 제품이다.
양평맑은술도가
양평맑은술도가는 2019년 문을 연 젊은 양조장이다. 양조장 대표님은 도시를 떠나 양평 용문산 자락으로 귀촌해 술을 빚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사실 그는 오래도록 술을 즐기지 않던 사람이었다. 흐트러지는 술자리가 싫어, 대학 시절까지는 취한 친구들을 챙겨 집에 데려다주는 쪽이었다. 그를 술의 길로 이끈 것은 민속학에 대한 관심이었다. 한류가 언젠가 한국 술로 이어지리라 믿고, 직접 양조장을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제주에서 양조장을 열 생각이었지만, 용문산 인근을 오가다 이 고장 풍광에 마음을 빼앗겨 양평에 자리를 잡았다.
국화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귀농·귀촌 교육에서 만난 한 귀농인이, 자신이 기르던 국화를 술에 넣어보라며 건넸다. 그 국화로 빚은 술의 향을 잊지 못해, 박 대표는 재료를 직접 농사짓기 시작했다. 지금은 국화와 메밀을 손수 길러 술에 담는다.
[이미지 삽입 위치 — 겨울 국화밭 또는 양조장 발효조]
겨울아이 동국이

겨울아이 동국이는 국화를 넣어 빚은 막걸리다. 이름의 ‘동국(冬菊)’은 추운 날 늦게 피는 겨울 국화를 뜻한다.
가을 국화보다 향을 진하게 머금은 ‘황어자’라는 겨울 국화를 쓴다. 그래서 막걸리 안에서도 국화 향이 흐트러지지 않고 살아 있다.
국화는 차로 내려 마지막 덧술에 넣는다. 세 번 빚는 삼양주에 세 가지 누룩을 더하고, 양평쌀로만 단맛을 냈다.
2021년 출시 이후 양조장을 대표하는 술이 됐다. 8도와 13도 두 가지가 있으며, 국내에서 국화막걸리를 만드는 곳은 이곳이 사실상 유일하다.
동이

동이는 메밀을 담아 내린 증류식 소주다. 이름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생원의 아들 동이에게서 따왔다.
대표가 직접 메밀 농사를 지어 술을 빚었다. 한 해 농사지은 메밀로 술을 담근 뒤, 다시 1년 넘게 항아리에서 숙성시켰다.
쌀을 바탕으로 메밀을 더해 고소한 곡물 향과 은은한 꽃향을 함께 담았다. 다단식 동증류기로 내려 50도의 묵직한 바디감을 지녔다.
“팔기 아까워 못 팔았다”는 대표의 말처럼, 오래 공들여 완성한 술이다.
우보주책
우보주책은 양평 용문면에서 밀에 집중하는 양조장이다. ‘소걸음으로 천천히 전통주의 비책을 찾겠다’는 뜻을 담아 이름 지었다고 한다.
양조의 시작은 뜻밖에도 비누였다. 아내가 기능성 비누를 만들려 막걸리 지게미에 눈을 돌린 것이 술로 이어졌다. 식품영양학 박사인 아내와 미생물을 전공한 조카의 도움으로, 술의 완성도를 차근차근 끌어올렸다.
이곳이 밀을 앞세운 데에는 사연이 있다. 한때 밀막걸리는 우리 막걸리의 주역이었다. 1965년 쌀로 술 빚는 것이 금지되자, 밀막걸리가 그 자리를 30년간 대신했다. 그러나 1990년대 쌀막걸리가 부활하며 밀막걸리는 자취를 감췄다.
우보주책은 사라져 가던 밀막걸리를 다시 불러냈다. 저가 막걸리가 아니라, 통곡물로 빚은 프리미엄 밀 막걸리로.
양평밀 막걸리

양평밀 막걸리는 양평 통밀과 국내산 쌀로 빚은 지역특산주다. 통곡물을 써서 은은한 산미와 밀도감이 높다.
8도와 13도 두 도수로 나온다. 13도는 응축된 맛으로, 단맛과 고소함, 새콤함이 층층이 어우러진다.
양평밀 소주

양평밀 소주는 양평 통밀만으로 내린 53도의 증류식 소주다. 우보주책이 밀막걸리와 함께 대표로 내세우는 술이다. 쌀 소주의 맛과 함께 밀 특유의 개성을 같이 즐길 수 있다. 해외 바이어들이 데킬라와 견주다 감탄했다는 술이기도 하다. 양평군 관광기념품으로 은상을 받았다.
아이비영농조합법인
아이비영농조합법인은 양평 강하면에서 벌꿀로 술을 빚는다. 양봉 농가들이 모여 세운 곳으로, 꿀 채집부터 술 빚기까지 한자리에서 이뤄진다.
양경열 대표님은 2023년 농촌진흥청이 뽑은 대한민국 최고 농업기술 명인이다. 양봉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선정됐다. 술은 넘치는 꿀에서 시작됐다. 2008년 봄, 꿀이 폭풍우처럼 쏟아지자 이 꿀을 어떻게 소비할까 고민이 깊었다.
“술을 만들면 꿀 한 병을 한 시간에 비울 수 있겠다.” 그렇게 국내 최초의 벌꿀와인이 탄생했다. 그가 만드는 술은 미드(mead), 곧 벌꿀와인이다. 포도가 자라기 어려웠던 북유럽에서 꿀을 발효시켜 마시던, 인류에서 가장 오래된 술로 전해진다.
허니비

허니비는 국내산 벌꿀을 3분의 1 넘게 담아 발효시킨 벌꿀와인이다. 8도의 부드러운 도수를 지녔다. 설탕 성분 없는 순수한 꽃꿀만 골라 쓴다. 여기에 말린 감귤 껍질을 더해, 달콤한 꿀향 뒤에 은은한 쓴맛이 따라온다.
출시 첫해 우리술 품평회 대상을 받았고, 몽드 셀렉션에서 3년 연속 금상을 받았다. 차게 식혀 마셔야 제맛이 산다.
허니문

허니문은 허니비보다 꿀을 더 많이 넣어 빚은 10도의 벌꿀와인이다. 효모가 꿀을 더 오래 먹고 발효하며 도수가 올라간다.
꿀 함량이 높은 만큼 꿀맛과 꽃향이 깊고, 끝맛은 드라이하게 떨어진다. ‘허니문’이라는 이름은 신혼부부에게 한 달간 벌꿀술을 마시게 했다는 옛 풍습에서 왔다.
2022년 대통령 취임식 만찬주로 올랐고, 2025년 우리술 품평회 기타주류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