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왕도라는 경주. 시내 어디를 걷든 발밑에 왕릉이 있고, 도로 하나 건너면 절터가 나온다. 다른 도시처럼 유적이 박물관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생활 공간 한가운데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 경주의 특이한 점이다.
관광지는 주로 황남 시내권, 불국사·토함산권, 보문관광단지권에 몰려있고 서악·북부권의 영동마을 동해안권의 문무대왕릉과 주상절리는 방문해봄직하다.
목차
경주 시내권
동궁과 월지

신라가 멸망한 뒤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폐허가 됐고, 조선시대 문인들이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드는 것을 보고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을 붙였다.
1975년부터 본격 발굴이 시작돼 건물터 26곳과 유물 3만여 점이 쏟아져 나왔는데, 무덤 부장품이 대부분이던 그때까지의 신라 유물과 달리 실생활에 쓰던 그릇과 14면체 주사위 같은 물건이 많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발굴 결과 신라 때 이곳을 월지라 불렀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2011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현재 3채의 누각만 복원돼 있고 나머지 건물터는 주춧돌만 남아 있다. 연못에 비친 누각과 조명이 어우러지는 밤 풍경이 유명해서, 낮보다 해 진 뒤 방문이 압도적으로 인기 있다.
발굴 당시 나온 유물 상당수는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 따로 전시돼 있어, 연못을 둘러본 뒤 박물관에서 실물을 확인하는 동선을 추천한다.
동궁과 월지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첨성대

첨성대는 삼국사기 기록에 따라 선덕여왕 재위 시기(632~647년)에 지어진 것으로 본다. 아시아에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꼽히며, 한반도 고대 건축물 중 후대 복원 없이 창건 당시 모습 그대로 남은 유일한 문화재이기도 하다.
화강암 362개를 27단으로 쌓아 올렸는데, 이 숫자를 두고 음력 1년의 날수, 28수 별자리, 혹은 신라 27대 왕인 선덕여왕 자신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엇갈린다. 몸체 중간에 난 네모난 문 아래로 흙을 채워 사다리를 걸치고 오르내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 용도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지상에서 겨우 9m 남짓 높아지는 구조라 순수 관측 기능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천문대 외에도 제단이나 선덕여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물이었을 가능성이 함께 거론된다. 다만 학계에서는 여전히 천문 관측 시설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주변 화단이 계절마다 다른 꽃으로 채워져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함께 사진에 담긴다.
첨성대
경상북도 경주시 첨성로 140-25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 천 년의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곳이다. 금관·금허리띠 같은 왕실 유물부터 토우, 생활 토기까지 소장 범위가 넓다.
야외 종각에 걸린 성덕대왕신종, 흔히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이 범종은 아이를 시주해 완성했다는 설화로 유명하다. 실제로는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주조를 시작해 혜공왕 때 완성한 것으로, 국내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크고 소리가 웅장하기로도 손꼽힌다.
동궁과 월지 발굴 때 나온 유물을 따로 모은 월지관도 놓치지 않는 편이 좋다. 입장료가 없다는 점도 부담을 던다.
국립경주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월정교

월정교는 통일신라 경덕왕 시기 남천을 가로질러 왕궁(월성)과 남쪽 마을을 잇던 다리였다. 오랫동안 교각 흔적만 남아 있다가, 발굴 조사를 근거로 목조 상부 구조까지 온전히 복원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복원 공사에만 20년 가까이 걸렸을 만큼 고증에 공을 들였다. 다리 양쪽 끝에 선 2층 문루가 궁궐 대문 같은 위압감을 주는데, 야간 조명이 켜지면 그 인상이 한층 강해진다.
다리 위를 걸어서 건널 수 있어, 첨성대·동궁과 월지 야경을 본 뒤 마지막 코스로 들르기 좋다.
월정교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74-3 일대
황리단길

황리단길은 대릉원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거리다. 이름은 이 골목이 있는 황남동의 ‘황’과, 서울 경리단길에서 따온 ‘리단길’을 합쳐 만들어졌다.
원래는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2010년대 중반부터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소품점이 하나둘 들어서며 지금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고분군 바로 옆에 상업 거리가 붙어 있는 구조가 이 거리만의 특징이다.
낮에는 대릉원에서 왕릉을 보고, 저녁에는 이 거리에서 식사와 산책을 이어가는 동선이 자연스럽다. 전통주 판매점과 소규모 양조장도 모여 있어 지역 술을 맛보기에도 좋은 자리다.
황리단길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로 일대
불국사·토함산권
불국사

불국사는 신라 재상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발원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751년 공사를 시작해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국가 사업으로 완성됐다.
경내에만 국보 7건, 보물 6건이 흩어져 있을 만큼 밀도가 높다. 청운교·백운교는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잇는 다리로 설계됐고, 대웅전 앞뜰의 다보탑과 석가탑은 각각 화려함과 절제된 균형미로 대비를 이룬다.
1995년 종묘·팔만대장경·석굴암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신라 불교미술과 건축 기술이 한 공간에 압축돼 있어, 경주에서 한 곳만 골라야 한다면 첫손에 꼽힐 만하다.
불국사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
석굴암

석굴암도 불국사와 마찬가지로 김대성이 발원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강암을 다듬어 인공 석굴을 만들고 그 안에 본존불을 앉힌 구조로, 목재가 아닌 돌로 궁륭형 천장을 쌓은 기법이 당대 기준으로도 이례적인 완성도를 보인다.
토함산 중턱, 동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에 있다. 본존불이 바라보는 방향이 문무대왕릉과 이어진다는 해석이 있어,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려 한 문무왕의 뜻과 석굴암의 배치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본존불의 균형 잡힌 비례와 정교한 조각 기법은 신라 석조 예술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불국사와 함께 1995년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석굴암
경상북도 경주시 석굴로 238
서악·북부권
양동마을

양동마을은 여강 이씨와 월성 손씨, 두 씨족이 500년 넘게 함께 살아온 전통 마을이다. 조선 전기부터 형성돼 지금도 후손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
물봉골·안골 등 골짜기를 따라 기와집과 초가가 산자락에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어, 반듯하게 구획된 마을과는 결이 다르다. 조선 시대 양반 마을의 생활상과 유교적 공간 구성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실제로 주민이 거주하는 마을이라 관람 시 소음과 사생활 침해에 유의해야 한다. 마을 입구 양동마을문화관에서 미리 배경 지식을 익히고 들어가면 골목마다 놓인 고택의 의미가 한결 잘 읽힌다.
양동마을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38-18
동해안권
양남 주상절리군

양남 주상절리군은 신생대 화산 활동으로 흘러나온 용암이 서서히 식으며 수축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육각기둥 바위 지대다.
제주도나 울릉도의 주상절리가 대개 수직으로 서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부채꼴 모양으로 눕거나 휘어진 형태가 섞여 있어 지질학적으로 희귀한 사례로 꼽힌다.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약 1.7km 해안을 따라 파도소리길 데크가 조성돼 있어 절벽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읍천항 방파제에는 첨성대를 본뜬 등대가 서 있어 작은 포토스팟 역할을 한다. 산책로가 끝나는 하서항 인근에는 하서해안공원이 있어 걷다 지치면 쉬어가기도 좋다.
양남 주상절리군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일대
문무대왕릉

문무대왕릉은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수중릉으로 전해지는 바위다. 三國史記·三國遺事에 단편적으로 남은 기록에 따르면, 문무왕은 죽어서 호국룡이 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이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 바위에 모셨다고 전해진다.
아들 신문왕은 부왕의 유언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인근에 감은사를 세웠고, 용이 된 부왕을 직접 보았다는 자리에는 이견대라는 누각을 세웠다. 감은사지·이견대·문무대왕릉이 하나의 설화로 엮여 있어 세 곳을 함께 둘러보면 이야기가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봉길해수욕장 앞바다에 떠 있는 형태라 배를 타지 않고도 해안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문무대왕릉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앞바다
보문관광단지권
보문호수

보문호수는 1970년대 국가 관광단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인공 호수다. 원래 농업용수를 위한 저수지였던 자리를 넓혀, 호수를 중심으로 숙박·레저 시설을 배치하는 지금의 관광단지 구조를 갖췄다.
호수를 한 바퀴 두르는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봄에는 벚꽃길로, 여름과 가을에는 호수 산책 코스로 사계절 내내 사람이 찾는다. 물가에 늘어선 벚나무가 만개하는 4월 초에는 이 일대에서 벚꽃 축제가 열린다.
주변에 대형 리조트와 호텔이 몰려 있어 경주 여행의 숙박 거점으로 삼기에도 좋다. 시내권과 불국사권 사이에 자리해 이동 동선상으로도 걸치기 좋은 위치다.
보문호수
경상북도 경주시 신평동 일대
남산권
경주 남산(삼릉계·용장골)

경주 남산은 산 전체가 노천 불교 유적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골짜기마다 불상과 탑이 흩어져 있다. 신라인들이 왕경을 지키는 영산으로 여겨 산 곳곳에 절과 불상을 새겼기 때문이다.
삼릉계곡에는 신라 왕릉으로 추정되는 소나무숲 속 세 개의 능이 있고, 계곡을 따라 오르면 마애관음보살상과 삼릉계 석불좌상 같은 마애불을 잇달아 만난다. 용장골에는 매월당 김시습이 한문소설 金鰲新話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용장사 옛터가 있고, 그 위로 삼층석탑과 마애여래좌상이 남아 있다.
남산은 경주역사유적지구를 구성하는 5개 지구 중 하나로 유네스코에 등재돼 있다. 등산로가 여러 갈래라 체력과 시간에 맞춰 짧은 코스부터 종주 코스까지 고를 수 있다.
경주 남산(삼릉)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73 일대
서출지

서출지, 書出池는 ‘글이 나온 연못’이라는 뜻이다. 신라 소지왕이 동남산에 행차했을 때 연못 가운데서 노인이 나타나 “거문고 갑을 쏘라”는 문장이 적힌 편지를 건넸고, 왕이 그대로 따라 활을 쏘아 자신을 해치려던 자객을 막았다는 설화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연못은 크지 않지만 뒤편으로 동남산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든다. 연못 한쪽에는 조선시대에 지은 정자 이요당이 자리해 고즈넉한 풍경을 더한다.
여름철에는 연못을 가득 채운 연꽃이 이요당과 어우러지며 조용히 사진 찍기 좋은 자리로 알려져 있다. 남산 자락 초입이라 등산 전후로 들르기 좋다.
서출지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973
여행 팁
경주는 유적을 보러 가는 도시라기보다 유적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도시에 가깝다. 서두르지 않고 걷다 보면 왕릉 옆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