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하면 떠오르는 건 일산 신도시와 킨텍스, 호수공원이다. 서울의 위성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한 탓에 이 고장만의 먹거리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고양은 한강을 낀 비옥한 충적평야 위에 세워진 도시다. 신도시가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벼농사와 채소 농사, 강 어업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땅이었다.
조선 왕실에 진상되던 물고기가 뛰놀던 강, 5천 년 전 볍씨가 묻혀 있던 논, 250년 넘게 밤나무가 우거졌던 마을까지 고양의 특산물과 음식에는 이전에 품고 있던 시간이 담겨 있다.
목차
고양 특산물
고양 가와지쌀

1991년 여름, 일산 신도시 공사가 한창이던 대화동 가와지 마을 논바닥에서 볍씨 한 톨이 발견됐다. 손보기 교수가 이끈 문화유적조사단이 토탄층을 파던 중 찾아낸 이 볍씨는 약 5,000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재배벼였다. 신도시를 짓기 위해 파헤친 땅에서 오히려 고양이 아주 오래전부터 벼농사를 지어온 고장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이 볍씨의 이름을 딴 품종이 가와지 1호다. 2019년부터 재배를 시작해 지금은 고양을 대표하는 쌀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도정을 적게 한 저분도미라 찰지고 쫄깃한 밥맛이 특징이다. 배다리도가는 이 쌀로 가와지탁주를 빚어 손으로 직접 빚은 막걸리를 제한된 수량으로 선보이고 있다.
밤 — 정발산 밤가시마을

일산 정발산 북쪽 자락에는 오래전부터 밤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조선 중기에 쓰인 고양군지(高陽郡誌)에는 이 마을이 율악부곡(栗岳部曲)으로 기록되어 있다.
밤 율(栗)자를 쓴 것으로 보아 적어도 250년 전부터 밤이 이곳의 특산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을이면 밤을 다 털어내고 남은 밤송이 가시가 온 마을 바닥에 흩어졌다고 해서 밤가시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밤나무로 기둥과 서까래를 세운 오래된 초가, 밤가시초가가 지금도 남아 있다.
경기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 집은 일산 신도시 개발 속에서 유일하게 보존된 전통가옥이다.
요즘은 이 일대가 밤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오래된 골목 사이사이 개성 있는 카페와 맛집이 들어서며 옛 밤나무골이 새로운 산책길로 되살아났다.
웅어

봄이 무르익어 곡우 무렵이 되면 한강과 바닷물이 만나는 행주 앞강으로 웅어 떼가 거슬러 올라왔다. 은백색 몸에 기름이 오른 웅어는 회로 뜨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고 해서 예부터 회 중의 상품으로 꼽혔다.
정약전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웅어를 두고 맛이 달고 진하다고 적었다. 조선 조정은 아예 고양 행주에 위어소(葦漁所)라는 관청을 두고 웅어잡이를 관리했다한다.
봄이면 관리가 50여 일간 머물며 잡은 웅어를 석빙고에 채워 왕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1755년 고양군지에 남아 있다. 겸재 정선은 이 무렵 행주 앞강에서 웅어를 잡는 풍경을 그려 ‘행호관어도’라는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한강 개발로 물길이 바뀌고 갈대숲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한강에서 웅어를 보기 어려워졌다. 때문에 요즘 고양의 웅어 전문점에서는 웅어를 대부분 남쪽 지방에서 공수해 온다고 한다.
능곡 배 (골머리배)

지금은 아파트와 상가가 빼곡한 능곡과 화정 일대에도 한때 배나무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능곡과 원당 사이, 골머리라 불리던 마을에서 자란 배는 골머리배로 불리며 이름을 알렸다.
봄이면 화정리 마을 전체가 배꽃으로 하얗게 뒤덮였다고 전해진다.
이 배나무밭은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자리이기도 하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다시 자란 나무들이 해마다 흰 꽃을 피워낸 셈이다.
배가 익는 계절이면 농부들이 길가에 나와 갓 딴 배를 팔았고, 지나던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사 먹는 풍경이 흔했다.
1990년대를 지나며 과수원 자리는 대부분 아파트와 상가로 바뀌었다. 지금은 맛보기 어려운, 기억으로만 남은 고양의 특산물이다.
일산열무

일산 지역은 한강이 오랜 세월 실어 나른 흙이 쌓여 만들어진 충적평야다. 유기물이 풍부한 이 땅은 예부터 채소 농사에 알맞았다.
1977년에 쓰인 고양군지(高陽郡誌)에도 이곳이 기름진 땅 덕분에 열무 같은 고급 채소를 많이 재배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일산열무는 잎 색이 짙푸르고 줄기가 단단하며 수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아삭한 식감과 진한 향 덕분에 시장에서 다른 지역 열무보다 높은 값에 거래된다.
2024년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지리적표시 제115호로 등록되며 품질과 명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고양시에서만 해마다 350여 농가가 약 2만 톤을 생산한다. 6월부터 8월 사이가 한창 제철이며, 얼갈이와 섞어 물김치로 담그면 아삭한 식감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다.
고양시 지역음식
웅어회

앞서 소개한 웅어로 만든 대표 음식이 바로 웅어회다. 한때 왕에게만 올라가던 진상품이 지금은 누구나 맛볼 수 있는 봄철 별미가 되었다.
회로 뜨면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살아 있고, 씹을수록 고소한 뒷맛이 올라온다.
깻잎을 깔고 초고추장과 고추냉이를 곁들여 비벼 먹으면 맛이 한결 다채로워진다.
따뜻한 밥에 비벼 웅어회덮밥으로 즐기기도 하고, 막걸리에 살짝 담갔다 새콤하게 무쳐 먹는 웅어회무침도 있다.
능곡역 인근의 ‘자유로장어웅어회’가 대표적인 맛집으로 꼽힌다. 제철인 4~5월이면 살이 더 연하고 부드러워지며 은은한 수박향까지 감돈다.
미꾸라지 털레기

가을걷이가 끝난 논과 도랑에는 겨울잠을 앞두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미꾸라지가 많았다. 넉넉지 않던 시절, 이 미꾸라지는 논농사를 짓던 고양 농가에 귀한 단백질원이었다.
미꾸라지탕에 국수와 수제비, 있는 채소를 모두 털어 넣고 끓인다고 해서 털레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기 북부 지역에서 두루 먹어온 향토 음식이다. 통째로 넣은 미꾸라지가 국물에 진한 감칠맛을 낸다. 매운탕처럼 얼큰하면서도 민물 특유의 비린내는 크게 나지 않는다.
고양시청 인근과 대자동 일대에 이 맛을 이어가는 오래된 식당이 남아 있다. 쫄깃한 수제비를 먼저 건져 먹고 남은 국물에 소면을 말면 든든한 한 끼가 된다.
행주 장어구이·국수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민물포구 행주나루 주변에는 지금도 민물장어를 기르는 양식장이 모여 있다. 초벌구이를 마친 장어를 식탁에서 한 번 더 구워 내는데, 진한 풍미와 쫄깃한 식감이 살아 있다.
담백한 소금구이와 감칠맛 나는 양념구이 중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행주산성을 오른 뒤 출출할 땐 가볍게 국수 한 그릇도 좋다.
행주국수는 잔치국수와 비빔국수가 기본이고, 미꾸라지를 넣은 추어국수 같은 메뉴도 함께 판다.
행주산성 아래로 장어거리가 형성되어 있어 여러 식당을 둘러보며 취향에 맞는 곳을 고를 수 있다. 넉넉한 양과 합리적인 가격이 장점이다.
일산칼국수

1982년 무렵, 황경순 할머니는 대대로 짓던 농사만으로는 살림이 어려워지자 작은 판잣집에서 국숫집을 열었다.
그때만 해도 칼국수는 멸치나 바지락 육수가 흔했다. 할머니는 닭을 푹 고아 국물을 내고 여기에 바지락 감칠맛을 더한 칼국수를 선보였다.
이 독특한 조합이 입소문을 타며 손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후 일산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며 가게 자리가 철도 부지와 택지에 여러 차례 편입되었다. 그때마다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럼에도 신도시로 이사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집 칼국수부터 찾아 인연을 맺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2대째 아들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일산칼국수라는 이름을 내건 식당이 일산 곳곳에 많지만, 공식 분점 없이 정발산동 본점이 유일하다.
진한 닭육수에 바지락 감칠맛이 더해진 국물과 아삭한 겉절이 조합이 인기 비결이다.
고양시 제철 캘린더
| 먹거리 | 제철 시기 | 대표 맛 | 추천 즐기는 법 |
|---|---|---|---|
| 고양 가와지쌀 | 가을 (10~11월 수확) | 찰지고 쫄깃한 밥맛 | 갓 지은 밥, 가와지탁주 |
| 밤 (밤가시마을) | 9~10월 | 고소하고 단단한 식감 | 군밤, 밤조림 |
| 웅어 | 4~5월 | 기름지고 고소한 맛 | 웅어회, 웅어회무침 |
| 일산열무 ★ | 6~8월 | 아삭한 식감, 진한 향 | 열무김치, 물김치 |
| 미꾸라지 털레기 | 8~11월 (가을이 절정) | 얼큰하고 구수한 국물 | 수제비, 소면 곁들여 |
능곡배는 1990년대 이후 과수원 대부분이 사라져 지금은 맛보기 어렵다. 이름과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고양의 특산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