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 끝나는 자리에 섬진강이 흐른다. 산과 강이 맞닿는 이 경계에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술을 빚었다. 하동은 야생차의 고장으로 먼저 알려졌지만, 술의 고장이기도 하다.
화개장터를 오가던 장꾼들이 목을 축이던 막걸리, 악양 평사리 들녘의 쌀로 빚은 생막걸리, 대봉감으로 내린 과실주까지—하동의 술은 이 땅의 풍경을 닮았다.
하동 전통주의 뿌리는 오일장 문화에 있다. 영남과 호남의 경계에 걸친 화개장터는 조선 중엽부터 전국 7위 규모를 자랑하던 큰 시장이었다.
지리산 산채와 섬진강 수산물, 호남평야의 곡물이 한 자리에 모이는 곳에 술도 따라 모였다. 각 면 단위로 운영되던 도가들이 그 수요를 받쳤고, 그 중 일부는 반세기를 훌쩍 넘겨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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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합동양조장
화개합동양조장은 화개장터에서 도보로 닿는 거리에 있다. 1970년대 정부 주도의 합병 정책으로 화개면 일대 두세 개 도가가 하나로 묶인 것이 오늘의 양조장이 됐다. 이근왕 대표는 대형 식품회사를 떠나 고향 하동으로 돌아와 가업을 이어받은 뒤, “지역을 찾아온 사람들이 찾아주는 술”을 만들겠다는 철학을 지켜왔다.
그는 지역 술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다. “지역 술은 지역의 풍토와 문화가 만들어낸 시와 노래”라는 말을 즐겨 쓰는 그에게 막걸리는 유통 전략의 산물이 아니라 화개 땅의 표현이다. 화개장터 막걸리에는 하동 쌀이 쓰이며, 증류 설비도 갖추고 있어 소주 라인 확장도 이어가고 있다.
화개장터 막걸리

화개장터 막걸리는 이 동네를 오가는 사람들의 일상주다. 걸쭉하고 친숙한 맛이 특징으로, 탄산이 살아 있고 목넘김이 부드럽다. 감미료 막걸리임에도 달지 않으면서 독특한 산미가 매력적인 꽤나 드라이한 맛이 인상 깊은 막걸리다.
하동에서 처음 만난 막걸리인데 하동 전반의 막걸리에 크게 관심이 가는 맛이다. 화개장터를 비롯한 화개면 일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별천지

주정 무첨가
별천지는 화개합동양조장의 프리미엄 라인이다. 쌀, 국, 효모만으로 빚어 원재료가 단출하다. 아스파탐도, 사카린나트륨도 없다. 구연산이 산미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드라이한 방향으로 균형이 잡혀 있다.
화개장터 막걸리에서도 느껴졌던 기분 좋은 산미와 드라이한 밸런스가 이 양조장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프리미엄 라인답게 더 묵직한 바디감과 쌀결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화개면 하나로마트에서 구매했고 가격은 8,000원이다. 하동 방문 시 꼭 먹어봐야 할 막걸리라 꼽고 싶다.
하동감와이너리
하동감와이너리는 악양면에 자리 잡은 과실주 양조장이다. 2016년부터 대봉감을 원료로 한 와인 생산에 뛰어들었다. 포도와 달리 대봉감은 산도 조성 자체가 달라 포도 와인의 양조 공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고, 이론을 갖추기 위해 강소농연합회 내에 하동와인연구회를 만들어 직접 주도하셨다고 한다.
악양 대봉감은 하동군 악양면이 최초 재배지로 알려진 품종이다. 크고 단맛이 진하며, 완전히 숙성되면 꿀처럼 흘러내리는 감로 같은 과즙이 특징이다. 이 풍성한 단맛을 발효 기반의 술로 빚어내는 것이 하동감와이너리의 과제였고, 브랜드 이름 ‘가므로’는 그 결과물에 붙여진 이름이다.
가므로 (500ml)

주정 무첨가
가므로의 단맛은 대봉감 자체에서 나온다. 설탕은 발효 보조와 보당에 쓰이며, 감미료는 들어 있지 않다. 메타중아황산칼륨과 소브산칼륨은 산화 방지와 보존을 위한 성분으로, 과실주 양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맛은 예상보다 드라이하게 시작해 감 특유의 달콤한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차갑게 마셨을 때 과즙의 풍미가 또렷하게 살아난다. 500ml 기준 양조장 출고가 20,000원. 온라인 쇼핑몰(hdwine.co.kr)에서도 구매 가능하다.
고전양조장
고전양조장은 하동군 고전면에서 꾸준히 지역 막걸리를 공급해온 양조장이다. ‘하동 참 좋은 술’이라는 제품명은 특별한 수사 없이 술의 정체를 그대로 이름에 담았다. 지역민의 밥상 막걸리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온 곳이다.
하동 참 좋은 술

‘하동 참 좋은 술’은 입국과 곡자(누룩)를 함께 쓴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개량 발효제와 전통 누룩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대량 생산 막걸리와 전통 방식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가격이 접근하기 쉬운 수준으로, 하동 지역 식당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악양주조
악양주조의 역사는 100년을 넘는다. 전신인 악양합동주조가 운영되어 온 것이 그 시작이고, 현재는 3대 째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15년 전 고향 악양으로 돌아온 그는 낡은 설비를 모두 교체하고 생막걸리 중심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1년에는 이름도 ‘악양주조’로 새로 달았다. 지금은 첫째 딸과 사위까지 합류해 가족이 함께 도가를 꾸리고 있다.
악양면은 2009년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섬진강 물줄기와 평사리 들판—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바로 이 악양이다. 악양주조는 이 들녘에서 자란 햅쌀과 찹쌀, 직접 만든 우리밀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
악양막걸리

악양막걸리는 도수 6도, 750ml짜리 생막걸리다. 하동 햅쌀에 국내산 입국과 전통 누룩을 함께 쓴다. 스테비올배당체로 단맛을 잡았고, 저온 숙성을 거쳐 출하한다. 달달한 향과 천연 탄산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청량한 스타일이다.
정감막걸리

정감막걸리는 악양주조의 프리미엄 라인이다. 백미에 찹쌀(국내산)을 더했고, 미강(쌀겨)도 원재료에 포함된다. 도수 8도로 악양막걸리보다 높다. 산미가 억제되고 쌀의 고소한 풍미가 앞으로 나온다는 평이 있는데 찹쌀 막걸리 치고 꽤 부드럽고 가벼운 질감이 인상에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