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쌀이 매우 귀한 섬이었다. 현무암 위에 쌓인 화산토는 물을 가두지 못하고 논을 허락하지 않았다. 쌀 없는 땅에서 사람들은 밭에서 나는 차조로 떡과 술을 빚었다.
차조로 만든 떡을 제주에서는 오메기떡이라 한다. 예로부터 오메기떡을 이용해 오메기술을 빚었고 그 술을 증류하면 고소리술이 됐다.
지금 제주에는 그 전통을 이어받은 명인이 있고,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는 신생 양조장들도 있다. 탐라의 바람을 맞으며 익어가는 제주의 술들을 나란히 정리했다.
목차
제주의 술 이야기
제주 사람들에게 술은 신을 만나는 매개였다. ‘당 오백 절 오백’의 섬에서 제당마다 강신잔을 올렸는데, 그 잔에 담긴 것이 오메기술이었다.
오메기술
오메기는 차조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차조가루를 익반죽해 도넛 모양으로 빚은 오메기떡을 누룩과 함께 발효시키면 오메기술이 된다. 쌀이 없던 섬이 찾아낸 막걸리의 원형이다.
1990년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됐다. 지금은 성읍민속마을의 고소리술 익는집과 제주샘주에서 상업 생산이 이어지고 있다.
고소리술
고소리는 소줏고리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오메기술을 고소리라는 전통 도기에 담아 증류하면 제주 전통 소주가 된다. 고려시대 제주를 점령한 몽골군이 증류 기술을 전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개성소주·안동소주와 함께 한국 3대 소주로 꼽히며, 1995년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됐다. 30도 안팎임에도 깊고 순하며, 은근하게 올라오는 취기가 특징이다.
술도가 제주바당
제주 동쪽 끝 종달리. 한적한 밭, 산길을 따라가면 술도가 제주바당이 나온다. 좋은 술엔 좋은 물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제주 화산 암반수와 용암 해수를 끌어다 양조장을 꾸렸다.
탁주·약주부터 쌀 증류주, 메밀 증류주, 도라지 증류주, 슈냅스 방식으로 증류한 키위까지 제주산 재료를 중심으로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다.

한바당

주정 무첨가
‘한바당’은 제주 방언으로 넓은 바다다. 탁주답게 넓고 둥글한 풍미가 특징이다. 제주산 쌀과 전통 누룩인 곡자만으로 발효하며, 3개월 이상 저온 숙성을 거쳐 병입한다.
감미료나 주정 없이 쌀과 누룩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단맛과 산미가 함께 흐른다. 도수는 12도로 식사와 함께 기울이기에 부담이 없다.
성산포소주

주정 무첨가
‘이 술을 마시면 구좌에서 성산까지 걸어갈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국산 효모와 멥쌀로 빚은 증류식 소주로 도수는 25도다.
부드러운 목 넘김과 청량감, 깔끔한 뒷맛이 특징이다. 25도임에도 거칠지 않고 제주 화산 암반수가 더해져 산뜻한 인상을 준다. 해산물 안주와 마시면 이 섬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밖에 산듸(제주 밭쌀)로 빚은 약주 맑은바당, 제주산 메밀 60% 이상을 로스팅해 증류한 메밀이슬, 제주산 백도라지를 감압 증류한 제주낭만, 골드키위를 슈냅스 방식으로 증류한 키위술도 운영한다.
하마하마양조장
하마하마 양조장은 제주 애월읍 곽지리, 곽지해수욕장 근처에 최근에 생긴 크래프트 막걸리 양조장이다. ‘하마하마’는 제주어로 ‘하마터면’이라는 뜻이다.
전직 제주맥주 브루어분께서 양조사로 일하고 계신다. 크래프트 맥주에서 흔히 쓰이는 로스팅 기법을 막걸리에도 적용했다. 전통 방식을 따라 퀄리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기법 역시 적극 활용하는 양조장으로 기대된다.

하마하마 너티

주정 무첨가
찹쌀·멥쌀에 로스팅한 제주산 메밀을 더해 빚는다. 물의 양을 줄여 바디감을 묵직하게 끌어올렸다. 고지방 우유를 마시는 것 같은 농후한 질감, 그 위로 은은한 초콜릿 향이 피어오른다.
첨가물 없이 쌀 본연의 단맛만으로 만든다. 8도로 가볍지 않지만 달지 않아 잔을 비우는 속도가 빠르다. 도수 8도, 현장 시음 무료, 병당 11,000원(3병 이상 10,000원).
현재 너티 외에도 메밀보감, 봄 시즌 한정 봄6·봄8(마리골드·금귤), 여름 한정 칠팔월(토마토·레몬청), 그리고 하마하마 오메기(차조+쌀)도 출시하고 있다.
일~금 14:00–18:00 운영, 토요일 정기휴무. 방문 전 확인을 권한다.
제주샘주
제주샘주는 2005년 애월읍에 설립된 전통주 전문 양조장이다. 제주 천연 지하 암반수와 한라산 자생 조릿대를 활용해 오메기술의 현대적 계승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술 품평회에서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대상 3회, 최우수상 2회를 포함해 7년 연속 수상한 이력을 가진 곳이다. 오메기술·고소리술 외에도 약재를 넣은 고급 증류주 니모메, 감귤과 벌꿀을 더한 바띠 등 다양한 라인업을 운영한다.

오메기술

주정 무첨가
차조와 쌀을 기본으로 한라산 자생 조릿대잎, 감초, 개똥쑥을 더해 빚는다. 전통 오메기술에 약초 요소를 더한 약주로, 13도와 15도 두 가지 도수로 출시된다.
차조 특유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과 약재에서 우러난 깊이가 함께 느껴진다. 쌀로 빚은 청주와는 결이 다른 탐라 고유의 맛이다.
니모메

‘니모메’는 제주어로 ‘내 마음에’라는 뜻이다. 제주 쌀이 주재료이고, 발효 중에 건조 제주 감귤껍질(진피)을 더해 귤 향과 단맛이 특징인 11도 가벼운 약주다.
제주 특산물인 귤을 활용한 술인만큼 가볍게 마실 때 인기가 좋고 관광시장 등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 고소리술 익는집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 제주 돌집과 돌담 사이, ‘제주 고소리술 익는집’ 간판이 보이면 차를 세운다. 대한민국 전통식품명인 84호이자 제주도 무형유산 고소리술 기능보유자인 김희숙 명인이 이곳의 주인이다.
고려시대부터 전해진 방식 그대로 좁쌀과 누룩으로 오메기술을 담그고, 고소리라는 전통 도기에 올려 증류한다. 눈물 한 방울에 술 한 방울이라 불릴 만큼 공들여 빚는다. 10인 이상은 사전 예약 시 전통 술 빚기 체험도 가능하다.
제주 오메기맑은술

주정 무첨가
오메기술을 발효 후 위로 맑게 걸러낸 약주다. 좁쌀·찹쌀·쌀과 누룩, 정제수만으로 빚는다. 쌀 청주와는 결이 다른, 차조 특유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750년 전 탐라 섬 사람들이 제당 앞에 올렸던 술에 가장 가까운 형태다. 제주 향토 음식과 함께 마시면 이 섬의 시간 속으로 잠깐 들어간 느낌이 든다.
고소리술

주정 무첨가
오메기술을 고소리에 담아 증류한다. 아래 솥에 술을 채우고 밀가루 시루번으로 밀봉, 위에 찬물 그릇을 얹어 가열한다. 알코올 기체가 찬물 그릇을 만나 고소리를 따라 한 방울씩 맺혀 흘러내린다.
30도 안팎의 도수임에도 맛이 깊고 순하다. 자극 없이 은근히 올라오는 취기가 이 술의 매력이다. 별떡이나 메밀범벅 같은 제주 향토 음식과 함께 마시면 탐라 섬의 시간이 재현된다.
시트러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서귀포 감귤연구소와 귤 농가들이 어렵게 돈을 모아 만든 양조장이다. 설립 초기 빚만 늘어가던 이 곳은 SBS 예능을 통해 백종원에게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감귤연구소가 개발하고 특허를 받은 감귤 효모를 사용한다. 열을 가한 농축액이 아닌 서귀포 생감귤 착즙을 원료로 써서 신선하고 상큼한 맛을 낸다.
매년 5월 감귤꽃이 만개할 무렵, 저렴한 가격에 선착순으로 양조장 투어를 진행하니 관심있는 분은 참고하시면 좋다.
미상25

감귤 발효원액을 증류한 후 정제수로 희석한 25도 증류주다. ‘미상(未詳)’이라는 이름은 감귤 발효주를 증류한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던 출시 당시, 분류하기 어려운 술이라는 의미에서 붙였다.
백종원이 마시는 장면이 유튜브를 통해 퍼지면서 재고가 바닥나는 술이 됐다. 감귤 향이 은은하게 밴 소주로, 제주 흑돼지나 갈치 요리와 함께 마시기에 딱 맞는 도수다.
신례명주

주정 무첨가
감귤 발효원액의 맑은 상등액만 분리해 두 번 증류하고, 최고급 참나무통에서 1년 이상 숙성시킨다. 도수 50도, 750ml, 한 병 11만 원. 매월 한정 수량으로만 생산한다.
감귤의 향과 오크의 스모키함이 어우러져 50도의 도수가 부드럽게 느껴진다. 제주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증류주로 자리 잡았다. 면세점 한정판인 신례명주 휴(58도)는 원재료에 구연산이 더해진 버전으로 도수를 더욱 높였다.
이 밖에 생감귤 착즙을 발효한 발효주 혼디주, 한라봉 착즙을 더한 스파클링 스타일의 마셔블랑도 시트러스의 대표 제품이다.
제주곶밭
제주시 서문로에 자리한 제주곶밭은 제주 감귤을 막걸리에 담는 방식으로 접근한 양조장이다. ‘곶밭’은 제주어로 숲과 밭을 아우르는 말이다.
쌀을 두 번 빚는 방식으로 기본기를 다지고, 당유자·귤꽃·귤즙·귤피를 더해 제주 감귤의 향을 막걸리 안에 풀어냈다. 메밀을 넣은 약주, 리몬첼로 계열 리큐르 등 다양한 라인업도 운영한다.
만다린 탁주

주정 무첨가
쌀로 두 번 빚은 막걸리에 당유자, 귤꽃, 귤즙, 귤피를 모두 넣었다. 도수 8도, 600ml. 감귤 향이 팡팡 터진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상큼한 향과 가벼운 바디감이 식사 자리에도 잘 어울린다. 제주 여행 중 편의점이나 마트보다는 양조장 또는 지정 판매처에서 구입하면 가장 신선하게 마실 수 있다.
백록주가
제주시 애조로에 자리한 백록주가는 ‘옴팡진 이곳에서 손수 빚는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소규모 전통주 양조장이다. 멥쌀가루와 찹쌀, 전통 누룩을 기본으로 제주의 계절 재료를 더하는 방식으로 술을 만든다.
달그리안 시리즈(탁주·소주·약주·하향주), 벚꽃 피는 날에 시리즈, 별그리안 초설감(감귤 증류주) 등 계절과 제주 식재료를 주제로 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벚꽃 피는 날에, 제주

주정 무첨가
찹쌀과 누룩을 기본으로 제주산 보검선인장가루와 벚나무꽃을 더해 빚은 탁주다. 농익은 과일 향과 꽃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른다고 한다. 29,000원.
벚꽃 시즌 제주 여행의 기념으로 챙겨오기 좋은 술이다. 이 밖에 달그리안 하향주(강한 단맛과 향의 약주), 별그리안 초설감(당도 높은 감귤 소주)도 대표 제품이다.
낙화곡주 (우도주막)
우도. 제주에서 배로 15분 거리의 섬이다. 이 섬에 반해 이주한 유현 대표는 우도 특산품인 땅콩으로 막걸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2012년부터 실행에 옮겼다.
제주에서 막걸리로는 최초로 지역 특산주 인증을 받은 곳이다.
양조장 옆 카페펍에서는 우도 땅콩 두부김치,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과 함께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 생막걸리 특성상 냉장 유통이 필수여서 현지에서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우도 땅콩 생막걸리

쌀을 기본으로 우도 땅콩 분말이 1.79% 들어간다. 도수 6도, 750ml. 단맛이 적어 막걸리 마니아나 드라이한 술을 좋아하는 이에게 잘 맞는다.
처음엔 쌀 막걸리의 부드러운 단맛이 오고, 뒤로 까슬하게 느껴지는 땅콩 향이 인상적이다. 달달한 맛을 원한다면 합성 땅콩향이 추가된 우도 땅콩 생전통주를 선택할 수 있다.
